<40> 주식 열풍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작년부터 주식에 투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급락한 주가가 다시 오르리라 확신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보를 얻는다."
(회사원 디디·26)
"친구가 주식을 하니까 따라 했다. 100만루피아(약 8만원) 투자했다. 사실 수익률은 좋지 않다. 그래도 매일 투자자들 표정을 읽는 일이 흥미롭다."
(회사원 리즈키·26)
인도네시아에도 주식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생부터 주부, 건물 경비원까지 주식과는 담 쌓고 살던 이들까지 나섰다. 증권계좌를 만들려면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하고, 거래대금이 넘쳐서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일등공신은 공교롭게도 코로나19이다. 2015년 정부가 추진한 '주식을 저축하자' 운동이 무색해졌다.
'코로나 급락' 끌어올린 적도 개미
지난해 연초 6,200선이던 인도네시아 종합주가지수(IHSG)는 현지에 코로나19 환자가 발생(3월 2일)한 지 한 달도 안 된 3월 24일 8년 만에 최저점인 3,937로 곤두박질쳤다. 외국인 투자자는 떠나고 금융 사고까지 터졌다. 이른바 '적도 개미'들은 지난해 6월부터 본격 증시에 참전했다. 돈의 액수보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였다. 올 들어 종합주가지수는 급락분을 모두 만회하고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1월 13일 6,435까지 치솟았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10개국 중에서 가장 앞섰다. 시가총액도 1월 기준 6,829조루피아(약 540조원)로 전년 수준을 회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20%대였던 개인 투자자 비중은 올 초 58%까지 올라갔다. 한국(60%)과 비슷한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올 1월 기준 증권계좌 수는 246만여개로 1년 전(138만여개)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개인 투자 증가세도 아세안에서 가장 높다.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IDX)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본시장 투자자는 전년보다 56% 증가한 387만명"이라며 "올해 말까지 850만~9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밀레니얼 세대의 힘
주력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다. 적도 개미의 절반 이상(54.79%)을 차지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이들은 SNS 등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소액 투자 대열에 잇따라 합류했다. 시장 분위기나 소문에 휩쓸리지 않고 각자 종목을 분석해 주로 우량주에 투자하는 똑똑한 개미들이다. 크리스티(25)씨는 "절대 욕심 부리지 않고 분석에 따른 계획에 맞춰 거래를 한다"고 했다.
적도 개미 증가는 투자 환경 개선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시장을 왜곡하는 큰손들을 척결하면서 생긴 공백을 적도 개미들이 메우면서 자본시장 개혁에 힘이 실린 것이다. 특정 시기에 특정 주식을 매매하도록 부추기는 '폼폼(pompom) 투자자'의 입지도 줄어들고 있다. 폼폼은 치어리더의 응원도구를 가리킨다. 주가가 5% 이상 떨어지면 거래가 한동안 정지되는 정부의 안전 장치도 신뢰를 얻고 있다.
인도네시아 주식은 적은 돈으로 투자할 수 있다. 719개 상장 종목 중 80여개가 주당 50루피아(4원)이다. 가장 비싼 종목인 구당가람(담배제조업체)이 3만7,000루피아(2,900원) 정도다. 이 때문에 한 주씩 매매되지 않고 100주 단위(1lotㆍ1롯)로 묶어 거래된다. 이곳에서 인도미(라면) 한 개나 노점 커피 한 잔, 또는 물 한 병을 살 수 있는 우리 돈 400원이면 주식 보유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는 대략 100만루피아로 투자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증시 전망은
올해 인도네시아 증시 전망은 긍정적이다.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증권사들과 투자자들은 세 가지 근거를 댄다. 먼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심각했던 코로나19 사태를 해소하기 위한 백신 무료 접종이 이뤄지면서 경제 회복 기대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데 인도네시아는 원자재 부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달러화가 구조적 약세로 가면서 기업들의 달러 부채 부담도 그만큼 줄었다.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도 강하다. △코로나19 지원금 확대 △금리 인하 및 유동성 공급 확대 △외국인 직접투자 규제 완화 및 외국인 부동산 소유 가능, 법인세 인하, 노동법 개정 등을 담은 일명 ‘옴니버스’법 △금융시장 안정책 등이 꼽힌다. 유망 종목으로는 원자재, 부동산, 운송, 양계 등 업종이 꼽힌다.
사실 인도네시아의 증시 역사는 깊다. 인도 봄베이(현 뭄바이ㆍ1830년), 홍콩(1847), 일본 도쿄(1878년)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네덜란드 식민지배 시절인 1912년 12월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증권거래소가 설립됐다. 1, 2차 세계 대전으로 두 차례 폐쇄됐다가 1952년 6월 3일(자본시장의날) 부활했으나 이후에도 쿠데타 등 정치 격변으로 부침을 거듭했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건 1988년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은행 예금에 쏠려 있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엔 교민들의 관심과 투자 문의도 덩달아 늘고 있다. 2021년 인도네시아 증시는 다시 부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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