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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여권

입력
2021.03.02 18:00
수정
2021.03.02 18:01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스라엘의 한 유대교 신자가 지난달 21일 이스라엘 해안 도시 네타냐의 유대교 사원에서 자신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서 '그린패스'를 보여주고 있다. 네타냐=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한 유대교 신자가 지난달 21일 이스라엘 해안 도시 네타냐의 유대교 사원에서 자신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서 '그린패스'를 보여주고 있다. 네타냐=AFP 연합뉴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감염병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은 말라리아다.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 원충에 의한 감염으로 주로 열대, 아열대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2억명 이상이 앓고 4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누적 사망자가 30억명이라는 추산도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 여행에 예방약 복용은 필수다. 사망률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는 해도 흔한 이 감염병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 비슷한 이유로 바이러스 감염병을 막기 위해 출국 시 백신 접종이 권고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황열(黃熱)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주로 발생하는 이 감염병은 아르보바이러스가 일으키는데 역시 모기가 매개한다. 백신으로 예방 가능하나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어 걸릴 경우 치사율이 최대 50%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다. 에볼라 못지않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가 간 이동 시 접종 대책을 요구하고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접종증명서를 상시 입국 조건으로 삼는 유일한 감염병인 이유에서다.

□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서 황열처럼 백신 접종증명서 도입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백신 여권'은 감염 예방이라는 보건적 고려가 있지만 전례가 없던 코로나 봉쇄를 거두고 이동을 촉진하려는 경제적 이유가 더 크다. 백신 접종 속도가 가장 빠른 이스라엘은 이 증명서 '그린패스'를 제시하면 강력 봉쇄 중인 국내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허용했다. 유럽에서 관광 수익이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체코 등이 백신 여권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미국이 발급 검토에 들어갔고 영국도 긍정적이지만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조심스럽다. 백신의 지속성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 데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차별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다. 당장 백신 여권을 도입하면 접종대상 순위에서 밀리는 소아청소년이나 임신부, 무엇보다 충분히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접종이 더딘 나라의 경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다만 백신 여권으로 지역, 국가 간 이동에 숨통을 터 얻을 이익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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