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하고 격리하면 오히려 재범률 높일 수 있어
안전하게 공존하려면 취업지원·심리치료 필요
사회와 격리됐던 '제2의 조두순'들이 10년 이상 형기를 마치고 속속 출소하고 있지만, 시민 공포와 불안을 끊어낼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안전판으로 꼽히는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는 착용 대상자가 급증하면서 부실 관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범죄예방 효과가 검증된 갱생보호시설과 심리치료도 예산 부족으로 제기능을 못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성범죄자와의 공존을 피할 수 없다면, 욕하고 멀리하는 것 이상으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① 갱생보호시설도 성범죄자에겐 문턱
출소자가 사회에 복귀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갱생보호시설은 재범 예방 효과가 어느 정도 확인됐다. 법무부 산하 갱생보호시설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공단)에 따르면 2015부터 5년간 출소자의 재복역률은 24.6%인 반면, 같은 기간 취업이나 주거지원을 받은 출소자의 재복역률은 각각 2.4%에 그쳤다. 사후관리에 동의한 대상자에 한해서 재복역률을 산출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공단은 취업 및 주거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출소자 선호도가 높다고 말한다.
이는 성범죄자에겐 남의 일이다. 갱생보호시설에서 자신들을 꺼려한다는 인식이 큰 탓이다. 강간미수로 4년여간 복역한 이진호(가명·44)씨는 "가뜩이나 범죄자들이 모이는 시설이라 주변 시선이 안 좋은데, 우리(성범죄자)까지 가면 부담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출소 후 공단에 입소하려다 생각을 접었다는 이씨는 "법무부 인정기관에서도 우릴 불편해하는데, 어떻게 사회에서 잘 살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가 취업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출소자를 주로 고용하는 '착한 기업'에서도 성범죄자는 부담스러운 근로자로 분류된다. 다른 범죄자와 달리 신상정보 공개명령을 받아 사람들 이목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회사에 주소지를 두는 경우 회사에 성범죄자가 산다고 알려져 민원이 발생하기도 한다. 공단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출소자를 고용하려고 하지만, 성범죄자 입장에선 회사에 피해를 줄까 봐 망설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에 세금 우대 등 실질적 혜택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성범죄 출소자를 고용하면 예상되는 불이익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출소자 고용기업의 우대조치를 담은 법안은 이미 준비돼 있다. 해당 법안에는 출소자 고용기업의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조달청 납품 시 가점을 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무부에서 의원 입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조두순 등 악질적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법안 논의는 사라진다.
② 성 충동 약물치료 병행돼야
성범죄 출소자는 다른 범죄자와 달리 심리치료가 재범 예방을 위해 필수적이다. 범행 원인인 왜곡된 성의식을 교정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갱생보호시설이나 보호관찰소를 통해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출소자들은 이용을 꺼린다. 법무부 산하기관이라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가 자칫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심리치료 활성화를 위해 민간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성범죄 출소자 재사회화를 돕는 코사코리아(COSA Korea) 박정란 대표는 "정부기관에서 다양한 민간상담센터를 지원하고, 출소자들에게 이를 연계해주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리치료만으로 왜곡된 성의식을 고칠 수 없다면 약물치료가 필요하지만, 법원에서 치료 명령을 받지 않으면 의료기관에 접근조차 쉽지 않다. 지난해 12월 출소한 조두순(69)도 약물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보호관찰관이 치료를 권하고 법무부가 치료받을 병원도 수소문했지만 병원들은 다들 손사래를 쳤다. 법무부 관계자는 "조두순은 치료 명령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인데 여건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③ 성범죄자 관리 인력 턱없이 부족
성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야간에 전자감독 인원을 많이 배치할 수 있도록 인력을 증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범죄 재범 사건의 절반 이상(56.7%)이 오후 6시~오전 9시에 발생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인력부족을 이유로 전자감독관과 무도실무관이 돌아가며 야간시간대 업무를 도맡고 있다. 야간 업무에 직원을 많이 배치할수록 주간 근무자가 처리할 업무량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정작 범죄 발생 취약 시간대에 심각한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수원보호관찰소는 야간에 직원 2명이 무려 211명의 전자감독 대상자를 감독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나마도 직원이 5명 이하인 보호관찰 지소는 야간근무조를 꾸릴 수조차 없어 인근 기관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영구 격리는 환상... 안전 투자 이뤄져야
성범죄 사건에 이목이 집중될 때마다 범죄자 형량을 대폭 높여 교정시설에 영구 격리하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교정시설 여건상 한계가 있다. 법무부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교정시설의 2019년 1일 평균 수용인원은 5만4,624명으로, 2010년에 비해 15% 증가한 반면, 교정시설 정원은 4만7,990명으로 4.5% 증가에 그쳤다. 현재도 교정시설 수용인원이 정원보다 많고, 수용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출소한 성범죄자들을 보호수용소에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회적 고립이 오히려 재범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사회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재범이 예방된다"며 "배척받으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출소자 지원을 특혜로 볼 게 아니라 사회 안전을 위한 비용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용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팀이 지난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공단 취업지원 프로그램 비용편익분석 수치는 2.26으로 조사됐다. 수치가 1보다 높으면 비용보다 편익이 높은 것으로, 출소자 지원이 효율적인 재범 예방 방안이라는 의미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출소자 지원은 국가가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자 안전을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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