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총리 등 현 이스라엘 지도부 포함
지휘 체계에 있는 정치인까지 수사 가능성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조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미국은 과거보다 훨씬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자칫 잘못하다간 전쟁에 연루된 정치 지도자들이 죄다 국제법정에 서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어서다. ICC가 두 강대국의 수사 중단 압박을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파투 벤수다 ICC 검사장은 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2014년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50일 전쟁)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요르단강 서안을 비롯,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사법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ICC 판결이 근거가 됐다.
ICC는 지난 5년간 가자지구 군사작전, 동예루살렘ㆍ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등 이스라엘 위법행위를 면밀히 조사해왔다. 국제사회는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으로 판단했으나,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대 속에 어떤 제재도 내려지지 않은 사안들이다. 특히 50일 전쟁은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 전쟁에서 서안, 가자,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일어난 가장 심각한 무력충돌로, 민간인만 무려 1,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ㆍ미국은 곧바로 비판 성명을 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나치가 유대인에 자행한 공포 재발을 막기 위해 설립된 법원이 유대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면서 “수치스러운 결정”이라고 맹비난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불공정하게 이스라엘을 겨냥한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이 이례적으로 발끈한 건 ICC의 무게감 때문이다. 만약 혐의가 확정되면 단순히 군 관계자들뿐 아니라 지휘체계에 있는 정부 고위인사까지 수백명이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관련자들이 국외에서 체포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신문 하레츠에 따르면 2014년 당시 총리였던 네타냐후 총리와 군사참모총장을 지낸 베니 간츠 국방장관도 기소 위험 명단에 포함돼 있다. ‘지도부 공백’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큰 것이다.
이스라엘은 앞서 ICC 수사를 막기 위해 ‘보여주기식’ 자체 조사도 진행했으나 논란을 잠재우진 못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ICC 비회원국이지만, 2015년 팔레스타인이 ICC 설립 조약인 로마규정에 가입한 후 제기한 혐의로 조사를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외신은 두 나라가 순순히 조사에 응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역시 ICC 비회원국인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미국인을 수사한다는 이유로 ICC 고위 인사들에 대해 제재까지 부과한 상태다. 영국 BBC방송은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미국과 다른 동맹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조사 저지를 위해 애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꾸로 ICC도 독립 기구로서 역할을 시험받는 심판대에 올랐다. 매슈 캐녹 앰네스티 국제사법센터장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범죄 피해자 수천명이 국제법 아래에서 정의, 진실, 배상에 접근할 수 있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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