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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론’에 함몰된 정치 어젠다, 바람직하지 않다

입력
2021.03.04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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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의 관찰-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초격차 산업 육성ㆍ새 일자리 창출 전략 등
이재명 기본소득보다 절실한 의제 넘쳐
코로나 불황에 기본소득 관심 부풀려져
고령화 변수 등 감안하면 재정여력 없어
‘재정 낙관주의’ 버리고 현실 직시해야
무조건 나눠주는 방식 사회활력 떨어트려
개인 성취동기 보장하는 마지노선 지켜야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이 3일 '기본소득론'에 대한 진단과 의견을 밝히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이 3일 '기본소득론'에 대한 진단과 의견을 밝히고 있다. 홍인기 기자


기본소득을 둘러싼 요즘의 갑론을박은 다소 어리둥절할 정도다.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주도해온 기본소득 어젠다는 어느새 찬반 입장을 떠나 여권의 모든 차기 대선 주자들이 입을 대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앞으로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더 든든하게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결코 우선순위가 밀리지 않는 수많은 국가적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과연 그토록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인지부터 차분하게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찬반 논란에서 한 걸음 떨어져, 기본소득론의 의의와 논의의 현주소, 기본소득론의 적실성 등에 대해 원로 경제학자로서 정파에 치우침 없는 활달한 입장에서 경세론을 펼쳐온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의 진단과 통찰을 들어본다.

-기본소득론이 어느새 경제·사회 의제의 중심을 차지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론이 최우선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절실한 의제인가.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라는 분들은 물론이고 야권에서도 여기저기서 입을 대는 상황이 된 건 맞다. 하지만 기본소득 문제가 우리 사회의 최우선 의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화두를 던지며 이슈 파이팅을 하고, 동조자들과 경쟁자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보태다 보니까 얘기가 필요보다 커지고 있는 거다. 제가 여러 가지 자료를 보니, 우리 국민의 당면 관심사는 오히려 코로나19 방역 등 안전, 일자리 창출, 그리고 공정한 사회 같은 거였다. 기본소득론이 전혀 뜬금없는 얘긴 아니지만, 그런 관심을 제대로 반영한 의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만약 국가의 번영과 국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차기 대선의 의제를 제시한다면 기본소득 외에 어떤 걸 제시하겠는가.

“양극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대 약점이다. 공정과 정의 차원에서 그걸 보정하려는 의제는 차기 대선에서도 절실하다고 본다. 특히 이번에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돈이 많이 풀리고 자산인플레가 발생하면서 양극화가 더 심화돼 후유증에 대한 걱정이 크다. 기본소득 같은 양극화 완화 대책만 필요한 게 아니다. 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시스템도 필요한데, 교육 여성 분야 등에서 그런 쪽으로 어젠다가 적극 개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당장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뉴프런티어’정책 의제가 절실하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우리 경제를 이끄는 동력이지만 더는 중후장대 산업에서 추가 일자리가 나오긴 어렵게 됐다. 새 일자리가 내수산업, 그중에서도 농축산, 임업, 어업 분야에서 고급화한 신종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에 맞춰 고령자 대상 비즈니스, 사회 고도화에 맞춘 문화·예술의 지역화 등에도 투자와 일자리 여지가 많이 남았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투자처와 일자리를 개발하는 뉴프런티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경제 못지않게 통일, 외교·안보 분야 의제도 막중한 것 아닌가.

“외교·안보 쪽은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의 외교적 입지 강화를 위해서라도 지금 반도체나 2차전지처럼 글로벌 분업체제에서 확고한 우위를 갖는 산업을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복지나 분배와는 다른 차원의 어젠다로 산업구조 개편과 성장에 관한 문제다. 사회 어젠다로는 코로나19로 새삼 중요성을 실감한 방역이나 재난대비 체제를 고도화하는 것도 중요한 의제다. 아울러 지금 정부가 무능하다고 하는데, ‘플랫폼 정부’를 겨냥한 정부 구조 개혁도 의제화가 시급한 주요 과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왼쪽)은 연구원에서 진행된 장인철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초격차 산업 육성이나 일자리 프런티어 정책 등 기본소득보다 절실한 국가 의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왼쪽)은 연구원에서 진행된 장인철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초격차 산업 육성이나 일자리 프런티어 정책 등 기본소득보다 절실한 국가 의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당장은 기본소득론을 비롯한 이 지사의 ‘기본 시리즈’가 대중적 관심과 지지를 적잖이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반응의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초격차 산업 육성이나 일자리 프런티어 같은 의제에 비하면 기본소득론은 그저 있는 것 나눠 먹는 방법에 관한 얘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적잖은 호응을 얻고 두드러진 정치 어젠다로 부상한 건 기존의 양극화 문제나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소외 문제 외에,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가 작용했다고 본다. 요컨대 코로나19 타격으로 살기 어려워진 국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나라가 무조건 정기적으로 돈을 준다’는 건 매력적인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 지사가 매우 기민한 정치가인 건 맞는 것 같다. 반면, 다른 차기 대선주자들이 찬반을 떠나 기본소득론과 경쟁할 다른 의제를 내놓지 못하는 건 노력을 덜하고 있거나, 어젠다 세팅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상당한 분들이니, 4월 보선 지나면 기본소득론 말고도 다양한 어젠다들이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기본소득 아이디어와 개념은 근세 이래 꽤 많은 사회·경제사상에도 등장한다. 그만큼 보편적인 생각이란 얘기 아닌가.

“사회주의나 복지사회 이념처럼 보편적인 생각인 건 맞다. 그 뿌리는 역사적으로 보면 정치적으로는 공유재산 논리로부터 나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산은 지구인들의 공유재산이다. 따라서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은 공유해야 한다는 게 기본소득론의 뿌리다. 그런데 공유재산 논리가 일리가 없는 건 아니라 해도 전적으로 타당한 것 또한 아닌 건 당연하다. 엄연한 사유재산 논리도 존재하지 않나. 따라서 상호 보완적인 생각으로 이해해야지, 온전히 그쪽으로만 가겠다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라는 조직이 1986년에 만들어졌는데, 초기 멤버들은 ‘기본소득은 공산주의를 향한 첫 단추’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이 소득을 넘어 기본주택, 기본대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거론될 때마다 약간씩 변주되기는 해도 ‘기본시리즈’라고 할 만한 틀을 갖춰가고 있는데, 전반적 진단과 평가가 필요할 것 같다.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한 전술로서는 매우 영리한 정치적 어젠다라고 본다. 내용을 보자면 기본소득은 일단 1인당 1년에 50만원 준다는 거고, 기본주택은 소득에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30년 장기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거고, 기본대출도 필요한 사람에게 일정액을 시중 실세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빌려주겠다는 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무조건적으로, 합당하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이 어렵지 않으냐’고 하면, 확신에 가득 차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못 하는 것’이라고 되받아친다. 이쯤 되면 주장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현실과 무관한 믿음이 형성되는 일종의 종교적 현상이 빚어진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론이 묘한 게 이 부분에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실현 가능성에 적잖이 의구심을 가진 말처럼 들린다.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앞서 이 지사식의 ‘기본시리즈’가 최선인지에 대해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본소득은 이미 생산성 면에서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그 ‘무조건성’에 내포된 불공정성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에서 선별 지원을 우선하려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기본대출은 결국 정부가 담보하고, 나랏돈이 투입되는 정책금융의 확장형인 셈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 같은 아이디어가 결코 아니다. 기본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공사 설립하고, 정부 기금이나 예산 지원받아 주택 구입하고, 그걸 임대하겠다는 거다. 집을 짓는 경우엔 정부가 부지 선택권도 주고, 용적률 같은 것도 높여줘서 좋은 위치에다 많은 집을 짓게 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그런 임대라면 주택을 소유까지 할 수 있는 30년 장기 할부금융제도가 있고, 주택을 짓는 거라면 수익 제한 조건을 두고 그런 지원을 민간에게 주면 정부보다 더 잘할 거고 산업생산 유발효과도 클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다 하는 기본시리즈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재정여력을 주장하지만 결코 낙관할 수 없는 게 냉엄한 현실"이라며 "막연한 낙관론보다 재정 상황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재정여력을 주장하지만 결코 낙관할 수 없는 게 냉엄한 현실"이라며 "막연한 낙관론보다 재정 상황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사실 기본시리즈가 최선인가를 따지기 앞서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정책이냐는 우려도 크다.

“현실적으론 그게 더 문제다. 이 지사 측은 일단 예산 지출을 구조조정하고, 그다음엔 조세 감면 축소하고, 장기적으로 증세해서 재원을 마련한다는 식이다. 나중엔 공유재산 개념에 입각해 토지세, 데이터세 같은 것을 신설한다고 한다. 처음엔 기본소득 연 50만원 정도로 시작해서 기본시리즈 넓혀가는 것에 맞춰 재원도 늘려나가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정계획은 그렇게 막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역대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늘 얘기했지만 그게 쉬운가. 조세 감면 축소는 증세 아닌가. 지난해 한국지방세연구원 김필헌 박사 같은 분이나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기존 복지제도에 더해 기본소득을 병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직 우리나라 국가채무 수준이 OECD 회원국들에 비해 충분히 낮고,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지 않나.

“그게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지금은 물론 국가부채 비율이 낮다. 그런데 고령화 변수만 놓고 보자. 2019년 우리나라 고령화 비율은 15%였던 반면, 유럽연합(EU)은 20%였다. 그게 206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41%로 치솟고, EU는 29% 정도로 증가하는데 그친다. 이 차이가 왜 나는가 하면, 영국 독일 이탈리아 같은 EU 국가들은 1970년대와 80년대 초에 이미 고령화 파고를 지나왔다. 반면 우리는 2018년부터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에 앞으로 고령화 대응 정부 지출이 더욱 가속화한다는 의미다. 고령화 변수를 반영해 작년 9월에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2019년 국가채무 비율이 38%인데, 다른 변수 다 빼고 그냥 고령화 변수만 반영해도 2070년 국가채무 비율은 186%가 되는 걸로 추산된다. 거기에 당장 통일비용 같은 것만 반영해도 채무비율은 더 수직 상승하게 돼 있다. 또 기존 시스템만 유지해도 현재 GDP의 10.6%인 복지지출 비중은 2060년에 28.6%로 상승해 그 시점 EU의 27%를 추월하는 걸로 나온다. 그러니 우리 재정여력을 함부로 말하는 건 책임 있는 태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는 복지정책과 기본소득을 나눠준다는 개념 간에는 미묘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주류 복지정책과 기본소득론의 차이점을 든다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수많은 결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가장 괜찮은 시스템으로 남았다.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하고 사유재산으로 보호하는 체제로 보다 낳은 번영을 일군 것이다. 양극화 완화나 복지 강화 등을 통해 자본주의를 보다 좋은 시스템으로 개선해나가는 건 절실하다고 보지만, 개인의 근로나 성취 동기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건 사회 발전의 활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기존 복지제도는 그런 동기를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지원을 강구하는 방식이었다면, 극단적 기본소득론은 자칫 성취 동기를 무력화함으로써 번영의 활력을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기본시리즈가 일리가 있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보다 열린 시야를 갖고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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