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인사들이 尹을 대선 주자로 키운 역설
4·7 보궐선거 앞서 '反민주당' 전선 구축 가능성
文 대통령, 사의 표명 1시간 15분 만에 전격 수용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의를 전격 표명했다. 사실상 차기 대통령선거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반민주당 전선' 구축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에는 대형 악재다. 곧장 민주당에선 "역사에 남을 최악의 검찰총장"(노웅래 최고위원), "무책임한 정치 선언"(최인호 수석대변인) 등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윤 총장을 야권의 대선주자 반열에 올려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을 키웠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사의 의사를 굳히게 했으며, 초선 강경파 모임 '처럼회'가 사의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추미애가 때리니 윤석열이 커졌다
윤 총장의 '별의 순간'은 지난해 추·윤 갈등으로 점화됐다.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윤 총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추 전 장관 임명 당시인 지난해 1월 1%에 불과했다. 그러나 추·윤 갈등이 본격화한 지난해 8월 9%로 올랐고, '윤석열 징계 실패'가 확정된 올 1월 13%까지 치솟았다.
"추미애가 때리니 윤석열이 컸다"는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추 전 장관은 검찰총장 징계와 수사지휘권 박탈 등으로 윤 총장을 압박했고, "내 말을 안 듣는다" "명을 거역했다" 등의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추 장관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윤 총장을 물고 늘어지면서 윤 총장을 '거대 권력에 맞선 정의의 사도'처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박범계 등장에 사의 의사 굳혀
추 전 장관 후임인 박 장관도 다르지 않았다. 박 장관은 친문 핵심 의원으로 평소 검찰개혁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다. 지난달 1일 취임하며 "검찰 인사에 윤 총장의 의견을 듣겠다"며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듯했으나 말에 그쳤다. 지난달 7일 검사장급 인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킨 게 대표적이다. 윤 총장은 '추미애 라인' 핵심인 이 검사장의 교체를 요구한 바 있다.
박 장관은 지난달 24일에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검찰개혁) 의견을 모으면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장관으로 일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회의원"이라고도 했다. 사실상 윤석열 찍어내기에 나선 '추미애 시즌2'라는 관측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윤 총장이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결심이 섰을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의 명분 제공한 강성 의원모임 처럼회
당초 여권에선 "임기를 지키겠다던 윤 총장이 사의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그러나 처럼회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 발의 등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속도를 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처럼회는 친문 최강욱 열린우리당 대표와 황운하·김용민·김남국 민주당 의원 등 초선 강경파 의원 16명이 '검찰개혁 공부모임'을 표방해 결성한 모임이다.
결국 윤 총장은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법치주의 사수'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총장직을 던지며 사실상 정계 진출 의사를 밝혔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으로 윤 총장 재임 기간 오히려 검찰 위상은 추락했다"며 "검찰을 벗어날 계기를 찾던 윤 총장에 중수청 설치는 좋은 구실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도 통제 못한다는 '추·박·처럼회'
추 전 장관과 박 장관, 처럼회는 "문 대통령도 통제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 장관은 청와대와 협의 없이 윤 총장 징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도 지난달 7일 검사장 인사에서 '문 대통령을 패싱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 속도조절을 민주당에 주문했지만, 처럼회는 “중수청 시행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황운하 의원)며 과속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감싸거나 만류하지 않았다.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1시간 15분 만에 전격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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