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정아(53ㆍ가명)씨. 올 초부터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물을 끓이려고 주전자나 냄비를 올려놓고 깜박하기를 여러 번 급기야 최근에는 외출했다가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까지 생겼다. 잠을 잘 때도 큰 소리로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통에 남편과 함께 방문을 열어보는 횟수도 늘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9’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국내 치매 환자는 75만명(2018년 기준)이다. 유병률은 10%를 조금 넘는다. 65세 이상 고령인 10명 중 1명꼴로 치매를 앓는 셈이다. 80대 중반이 되면 절반 정도가 치매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급격한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2024년에는 치매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송인욱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는 뇌에 특정한 독성 단백질(아밀로이드, 타우 등)이 쌓이거나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겨 뇌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 영향으로 기억장애 등 인지 기능 장애가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 이상행동이나 시공간 장애, 망상, 환시 같은 환각, 공격적인 행동 등이 동반될 수 있다”고 했다.
◇급격한 고령 인구 증가…3년 후 치매 100만명 시대
치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기억력 저하다. 실제 가장 흔한 치매인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의 경우 기억력 저하가 먼저 발생한다.
치매 환자의 기억장애 정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는 예전 일은 잘 기억하는데 최근 일은 제대로 기억 못하는 등의 '최근 기억장애'에 있다. 최근 기억장애가 나타나는 이유는 치매 환자의 뇌가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고 저장하는 기능 손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억장애만으로 치매를 진단하지는 않는다. 송인욱 교수는 “사람의 인지 기능은 기억력 외에도 집중력, 판단력, 언어능력, 시공간 능력 등이 있는데 치매 환자의 인지장애는 다발성 인지장애로 기억장애 외에 집중력, 언어능력, 판단력, 시공간 능력 등의 다른 장애로 발현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송 교수는 “이러한 장애가 평소 혼자서도 잘하던 전화 걸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씻기 등 일상생활 수행 능력에 지장을 줘야 비로소 치매로 진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 환자 10명 중 7명은 알츠하이머병이 원인
치매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 결과,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 질환이 90여 가지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흔한 치매 원인 질환은 알츠하이머병이다. 전체 치매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해마를 중심으로 뇌 위축이 진행하면서 시작되는데 최근 기억력 저하로 증상이 시작된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혈관성 치매는 기억ㆍ의식ㆍ언어ㆍ방향감각 등 인지력을 관장하는 뇌의 중요 부위에 뇌졸중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발생하는 전략적 혈관성 치매, 소동맥 질환 등이 서서히 쌓여 인지력 저하가 발생하는 다발성 뇌허혈성 병변으로 인한 치매로 분류할 수 있다.
또 신경 퇴행성 질환 중 두 번째로 많은 파킨슨병과 동반된 치매가 있는데 파킨슨병 환자의 40% 정도에서 발생한다. 이는 이상행동 등 전두엽 기능 저하, 방향감각장애 등으로 시작되면서 기억장애 등이 나타난다.
다른 치매에 비해 환시나 성격장애 등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 밖에 환시·환청·증상 변동성·파킨슨병 증상이 동반될 수 있는 루이체 치매,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나 의처증ㆍ의부증 등 전두엽 기능 저하를 중심으로 보이는 전두측두엽 치매가 있다. 특히 전두측두엽 치매는 초로기 치매에서 더 잘 발생한다.
◇심한 잠꼬대는 치매 위험신호?
우리가 무심코 넘기기 쉬운 잠꼬대도 치매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 잠을 자면서 웅얼웅얼 혼잣말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또 잠꼬대와 함께 몸을 뒤척이다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몸을 심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이때 함께 자던 사람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자주 나타나는 심한 잠꼬대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특히 고령인에게는 파킨슨병을 포함한 퇴행성 뇌 질환 위험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실제 고령인의 잠꼬대는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의 전조 증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캐나다 맥길대에서 렘(REM)수면 행동장애 환자를 12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절반가량에서 파킨슨병을 포함한 퇴행성 뇌 질환 증세가 나타났다.
따라서 자면서 거친 말ㆍ욕설ㆍ소리 지름 등 잠꼬대를 심하게 한다거나, 심한 잠꼬대가 1주일에 한 번 이상 반복되고, 손을 허우적대고 발길질을 하는 등 심한 행동을 한다면 노인성 잠꼬대(렘수면 행동장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송인욱 교수는 “우리가 꿈을 꿀 때 뇌는 활성화되지만 팔다리 근육은 일시적으로 마비돼 꿈에서 나타나는 형상이 실제화하지 않도록 하고 우리 몸을 보호한다”고 했다. 송 교수는 “반면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으면 꿈을 꿀 때 근육이 마비되지 않아 꿈에서 나타나는 대로 팔다리를 움직이게 되는데 이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뇌 부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뜻하고, 파킨슨병을 포함한 퇴행성 뇌 질환의 전조 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 자극 치료 등 새 치료법…치매 극복 기대감 ‘쑥쑥’
치매는 각각의 진단에 따라 약물 선택이나 전반적인 치료에서 차이가 날 수 있기에 빠른 진단과 그에 걸맞은 적절한 약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치료가 가능한 치매도 있다. 치매 원인 중 신경 퇴행성 질환 외에 뇌염이나 수두증, 뇌병증, 약물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매의 경우 적절한 치료로 치매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적 인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치매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될 가능성이 생겼다. 특히 약물 치료 외에도 전기자극치료와 초음파 자극 등 비침습성 뇌 자극술로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 치료에 많은 기대감을 낳고 있다.
송인욱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려면 수면과 식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고 친근한 환경과 사람 사이에서 레저 활동이나 취미 활동 등 외부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울러 병원 주치의를 통한 적절한 치료와 함께 고혈압ㆍ당뇨병ㆍ이상지질혈증 등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인자를 적절히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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