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해자들 공소장 입수>
성폭행 당한 사실 들춰내며 조롱거리 삼아
단체 채팅방서 "걸레 같은 x" "뒤질래" 모욕
"엄마아빠 사랑해요" 딸 유서에 부모 통곡
검찰, 공갈·폭행·협박·명예훼손?혐의 기소
편집자주
성폭행과 또래들의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16세 소녀의 이야기를 추적했습니다. 출구 없는 현실 속에서 홀로 모든 고통을 감당했던 혜린이의 비극적 삶을 통해 사이버불링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짚어봤습니다.
지난달 한국일보 보도(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13118550004984)로 알려져 공분을 샀던 ‘장혜린(가명·당시 16세)양 비극’과 관련, 성폭행 피해자였던 혜린이에게 2차 가해를 일삼았던 또래 집단이 재판에 넘겨졌다. 혜린이는 폭행과 온라인상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A양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인천지검은 최근 공갈과 명예훼손, 폭행, 협박, 모욕 등 혐의로 A양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결과 혜린이는 전형적인 청소년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범죄의 피해자였다. 사이버 불링이란 온라인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집단적·지속적·반복적으로 모욕·따돌림·협박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혜린이와 알고 지내던 A양은 지난해 9월 페이스북 단체 채팅방에서 혜린이가 성적으로 문란하고,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했다. A양은 혜린이 남자친구까지 있는 채팅방에서 “(혜린이가) 걸레라는 게 팩트”라고 말하는가 하면, 혜린이가 전학하려는 지역에 사는 또래에게 “애들한테 소문 좀 내줘. 니네 동네에 걸레 한 명 갈 꺼야”라고 말했다. 성폭행당한 사실이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려 했던 혜린이의 과거를 들춰내며 조롱거리로 삼은 것이다.
A양은 혜린이에게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자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내 괴롭히기도 했다. A양은 혜린이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함께 ‘나한테 뒤진다.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받아’ ‘좋게 말할 때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봐. 안 때릴 테니까’ ‘말투 고쳐. 뒤질래’ ‘맞고 싶냐. 내일 만나서 좀 맞자’ ‘9시 반까지 안 오면 뒤진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A양은 또 혜린이에게 ‘페메 보라고 죽이기 전에. 지X이야. 존X 맞을래? 걸레X아. 니 걸레인 거 소문내주리’ ‘오늘까지 돈 구해 봐' 등의 메시지를 보내 겁을 주고 여러 차례 돈을 갈취했다.
집요한 괴롭힘은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졌다. A양은 지하상가와 식당 등에서 또래 집단이 보는 가운데 혜린이를 ‘걸레 같은 X’이라고 부르고 폭행하기도 했다. 자신의 퇴학 사실을 말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우산으로 혜린이 머리를 때렸다. 다른 장소에선 손으로 어깨를 밀치고 뺨을 때렸다. 폭행과 협박은 혜린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한 달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페이스북 단체 채팅방에서 혜린이를 괴롭히는데 가담했던 B군 역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B군은 또래 집단이 참여한 페이스북 채팅방에서 혜린이가 성적으로 문란하고, 강간 피해를 허위신고한 것처럼 퍼뜨리기도 했다. B군은 혜린이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인 지난해 9월 24일엔 혜린이 남자친구에게 ’(혜린이랑) 잘 때 조심해. 강간으로 신고 당해’ 등의 메시지를 전송하기도 했다. 또 다른 가해자 C양은 현재 수원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C양은 A양이 페이스북 단체방에서 혜린이를 괴롭힐 때 동조하면서 피해자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혜린이 유족은 A양 등의 기소사실이 알려진 뒤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시는 내 딸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가해자들에 대한 엄하고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혜린이 아빠는 딸의 사망 이후 눈물을 흘리며 수천 건이 넘는 딸의 페이스북 메시지 대화내역을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딸의 계좌이체 내역을 파악해 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했다. 교통카드 기록을 토대로 딸이 A양 등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끌려다녔을 동선도 분석했다. 혜린이 변호를 맡아온 박새롬 변호사는 “가해학생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반성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랑해요 엄마아빠.” 혜린이는 지난해 9월 27일 부모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혜린이를 강간한 가해자의 유죄 선고가 나기 열흘 전이었다. 딸은 유서에서 엄마아빠 딸로 언니의 동생으로 살아서 행복했다고 적었다. 혜린이는 ‘많이 속 썩이고 그랬는데 너무 죄송하다. 다음에 엄마 딸로 태어나면 이 기억 간직하고 속 안 썩이고 같이 백화점도 가고 같이 놀러도 가겠다’며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드러냈다. 혜린은 ‘눈 뜨고 죽는 건 무섭다. 이불 좀 챙겨가겠다’며 죽음을 앞두고 느꼈을 두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경찰청은 한국일보 보도 이후 학교폭력 예방 및 위기청소년 발굴·지원 시스템을 개편해 더 이상 홀로 고통을 감내하는 피해학생이 없도록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딸을 잃은 슬픔에도 장기간 취재에 응해주신 혜린이 유족에게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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