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주객전도된 한미연합군사연습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연합훈련)이 컴퓨터 게임처럼 돼가는 건 곤란하다.”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나 서욱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아닙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한미연합훈련의 축소를 우려하며 꺼낸 말입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도 최근 코로나19와 북한 측 반발이 변수가 된 연합훈련에 대해 “최근 2년간 훈련이 중단되거나 그 성격이 좀 바뀌었지만 한반도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다”며 “연합훈련은 연합준비 태세를 확인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우리 입장은 어정쩡합니다. 문 대통령은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필요하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차 당대회에서 ‘3년 전 봄날’로 돌아가기 위한 선제조건으로 훈련 중단을 요구한 직후였습니다. 문 대통령 발언에 보조를 맞췄던 국방부는 야당으로부터 “한미 간 2급비밀인 연합훈련을 적인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것이냐”며 혼쭐이 나기도 했지요.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의 실체적 위협인 북한의 침공에 대비하는 훈련인데 땅 주인인 한국은 소극적이고 미국은 오히려 훈련을 못 해 안달 난 모습이니 말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겁니다.
더구나 정부와 여권이 강조하는 '조속한 시일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한국군이 미래 한미연합군을 지휘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전작권 검증 훈련은 △1단계 IOC(기본운용능력) △2단계 FOC(완전운용능력) △3단계 FMC(완전임무수행능력)로 나뉘는데 지난해 두 차례 연합훈련이 축소·연기되면서 이미 끝냈어야 할 2단계 FOC 검증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운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진작 물 건너갔고, 이후 정부가 제시한 ‘조속한 시일 내 전환’도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미군을 졸라서 1년에 서너 번 해도 모자랄 훈련을 우리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실기동 아닌 ‘키보드 두드리는 훈련’ 하는 이유
통상 ‘한미연합훈련’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한미연합군사연습’입니다. 군사용어로 연습(Exercise)은 큰 부대가 연합(두 나라 이상)이나 합동(육해공군 간) 작전을 기획·준비·시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훈련(Training)은 작은 부대나 개인에게 부여된 임무를 숙달하는 과정이고요. 연습이 훈련보다 규모도 크고 강도도 셉니다. 한미연합훈련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철수하고 우리 국민이 느낄 불안을 막기 위해 1954년 ‘한미 포커스렌즈’라는 훈련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간 을지포커스렌즈(UFL),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수차례 개명됐던 이 훈련은 최근 ‘한미 연합지휘소 훈련’(CCPT)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년에 상반기(3월)와 하반기(8월) 두 차례 훈련을 합니다.
연합훈련이라고 하면 대규모 탱크와 함대, 전투기가 동원되는 실병(實兵) 기동 훈련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벙커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지휘소 연습입니다. 전시 상황을 가정해 아군, 적군(대항군)으로 나누고 컴퓨터 모니터에 화력과 병력 등 각종 데이터를 입력해 실시하는 일종의 ‘워 게임’(War Game)인 거지요. 가상의 적이 침공하면 방어하고 수복한 뒤, 추가로 반격할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과학적 기법의 전투 모델을 활용해 절차를 습득하고 그 과정에서 실행 가능성을 점검하는 거지요. 국방부가 “방어적 성격의 연례적 훈련”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시뮬레이션에 우리가 먼저 적을 공격하는 시나리오가 없기 때문입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무슨 훈련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실기동 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오해도 있고요.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도, 이명박 정부 때도 '컴퓨터 기반의 모의 지휘소 연습'을 해왔습니다. 훈련 기간 미 본토에서 들어오는 수천 명의 병력뿐 아니라 합참과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일본의 주일미군사령부, 미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는 물론 미 본토까지 C4I(지휘통제통신) 체계로 연결해 수만 명이 ‘워 게임’에 참여하기 때문이지요.
2주간 24시간 내내 이 병력들을 한데 모아 실제 미사일과 포가 오가는 대규모 훈련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비용도 막대할뿐더러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실제 전장을 구현할 장소를 한반도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2010년 시나리오에 있었던 ‘김정일 생포 작전’이나 ‘평양 점령’은 실기동 훈련에서 하기도 힘들고요. 예산과 지리적 제약 없이 한미가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겁니다.
“김일성이 부들부들 떨었다”는 연합훈련
물론 실제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는 대규모 야외 기동 훈련도 있었습니다. 한때 키리졸브(3월), 을지프리덤가디언(8월)과 함께 3대 한미훈련으로 불렸던 독수리훈련(FE)이 대표적입니다. 키리졸브가 끝나는 매년 3월 하순에 실시됐던 이 훈련은 2019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의 봄’을 논하는 과정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대대급 이하 소규모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야권 지적처럼 문재인 정부 들어 야외훈련이 축소된 건 사실입니다.
1961년 소규모 후방지역 방어훈련으로 시작된 이 훈련이 1970년대부터 공세적 성격으로 전환되면서 북한은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습니다. '포커스 레티나→프리덤 볼트→팀스피릿' 등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훈련 강도도 세진 겁니다. 미국의 핵 항공모함인 칼빈슨호나 B-52 폭격기 등 전략무기들이 한반도에 대거 집결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정이 쪼들리는 북한이 이에 상응하는 훈련을 하려면 막대한 예산과 병력을 투입해야 하니깐요. 1993년 김일성 북한 주석을 면담했던 개리 아커맨 미 의원은 “팀 스피릿을 거론했을 때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군인 본분은 훈련”... 미국이 ‘고강도 훈련’ 강조 이유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전작권 전환에 인색해진 미국이 고강도 한미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더 이상 남북미가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손잡고 북한 비핵화를 꿈꿨던 봄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휘소 훈련을 연기하고 대규모 실기동 훈련까지 없앴는데, 북한의 가시적 비핵화 조치는 없던 겁니다. 북한의 변화가 없으니 훈련도 원상복구하자는 논리입니다. “훈련에 큰 돈이 들어간다”며 북미 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 카드를 불쑥 꺼냈던 트럼프가 물러나고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이 집권한 영향도 있습니다. 동맹의 근간은 군사적 관계로,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훈련을 비롯한 모든 동맹국과의 훈련에 큰 비중을 둡니다.
무엇보다 군은 전쟁에 대비하는 조직입니다. 군인에게 훈련은 기본이자 필수임무지요.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지휘권을 행사할 에이브럼스 사령관에게 ‘당장 오늘밤에라도 싸울 수 있다’(파잇 투나잇·Fight Tonight)는 ‘준비태세’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미군 장교들에겐 “훈련하지 않으면 나중에 부하들의 피로 대가를 치른다”는 신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 합니다. 전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미국입니다. 6·25 전쟁 당시 전투를 경험해보지 못한 장병들로 구성된 ‘스미스 부대의 패배’는 에이브럼스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이고요. 군인 명문가 출신인 ‘강성’ 에이브럼스가 2018년 11월 취임한 직후 대규모 연합훈련이 없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훈련 축소는 진급과도 연결됩니다. 훈련을 해야 지휘관으로서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연합훈련은 아니지만 에이브럼스가 포항 수성사격장에서의 아파치헬기 훈련 불발에 민감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연내 최소 64일 이상 훈련 일수를 채워야 하는데 훈련 여건을 보장받지 못한 부하들이 진급에 불이익을 받을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지요.
전작권 서두르라면서 훈련은 하지 마라?... 속 앓는 군
우리 군이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서욱 장관 역시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부하의 피를 부른다는 에이브럼스 사령관 말에 동의하고 같은 생각”이라며 “군의 입장에서는 연합훈련을 정상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끼어들면서 스텝이 꼬여버렸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군 통수권자의 한마디에 “우리도 훈련을 하고 싶다”는 말을 대놓고 못하게 된 겁니다.
논리가 꼬인 건 국방부만이 아닙니다. 여권 정치인들은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전작권 조기 전환’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과제를 군 당국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해야 전작권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는데, 마치 ‘시험은 보지 말고 전교 1등을 하라’는 주문과 같습니다. 안민석, 김남국 의원을 비롯한 여권 성향의 의원 35명은 지난달 25일 “김정은 위원장까지 나서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며 연합훈련의 연기를 공개 촉구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논리의 오류를 잘 알고 있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여권 국방위원들은 불참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상반기 연합훈련이 오는 8일부터 18일까지, 9일간(주말 제외)의 일정에 돌입했습니다. 합참은 코로나19로 규모가 축소됐다고 밝혔지만 문제는 축소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북한을 의식해 훈련을 연기하고 싶었던 정부와 훈련을 간절히 원했던 군 당국 간에 충분한 소통이 이뤄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한미훈련을 어물쩍 넘겨버리고 싶었던 건 아닌지 의심도 듭니다.
확실한 건 김 위원장의 한마디에 한미훈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는 겁니다. 북한도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코로나19 변수가 사라져도 한미 간 연합훈련을 정상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남는 이유입니다. 올 하반기 연합훈련을 앞두고는 주객이 전도된 듯한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정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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