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는 계속된다, 행정장관 직선제가 먼저다.”
2019년 11월 입법의원(구의원) 선거 다음날, 홍콩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다. 민주진영이 86% 의석을 석권해 초유의 압승을 거뒀는데도 비장한 표정과 결기 서린 구호는 여전했다. 승리의 샴페인은 길거리 퍼포먼스에 그쳤다. 시내 곳곳을 돌아봤지만 좀체 환호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숨죽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칼자루는 중국이 쥐고 있다는 것을.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을 앞세워 선거제라는 게임의 룰을 바꿨다. 후보 출마 기회조차 막힌 마당에 직선제는 한낱 신기루일 뿐이다. 중국이 강조해온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는 반쪽이 됐다. ‘양제’의 포용과 조화는 사라지고 ‘일국’이 득세하는 오만과 고집만 남았다.
중국은 축제 분위기에 젖었다. “미국은 11시간 걸렸지만 중국은 1시간에 끝냈다”고 으스댔다. 미 공화당의 비협조로 2,000조원 규모 경기부양안 처리가 지체된 것을 빗댄 말이다. 반면 리커창 총리는 일사천리로 정부업무보고를 마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입증했다는 자부심이 담겼다. 지난해 홍콩 보안법 통과 때는 반대가 1표라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 홍콩 선거제는 2,896명 누구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롭게 갈등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지난 1월 미 의사당 난입사태 당시 제임스 랭포드 상원의원의 발언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어록을 인용해 혼돈에 빠진 미국을 추슬렀다. 더디게 가더라도 정부와 사회를 믿는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다.
같은 날 중국 관영매체는 “민주주의는 홍콩 헌법 체계를 전복시키려는 것”이라며 미국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려 애썼다. 홍콩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도, 인정할 능력과 여유도 없다는 조바심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리더십이 경제력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에 신경이 쓰일 법도 하건만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띄우며 흥을 돋우는 데 여념이 없다. 경기장에서 홍콩 선수단을 어떻게 맞이할 셈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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