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길렀어요."
9일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에서 만난 최모(81)씨는 한 밭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지난해 1월 땅이 팔린 이후부터 사실상 경작이 멈췄다는 것이다. 밭에는 뼈대만 있는 비닐하우스 4개 동과 검은 천막을 친 하우스 1개 동이 전부였다. 최씨는 "작년 봄 비닐하우스 구조물을 설치한 게 전부고, 검은 하우스도 지금은 텅 비어 있다"며 "저렇게만 해 놓아도 토지보상금이 더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이 불거진 광명·시흥지구 곳곳에는 높은 토지보상금을 노린 듯한 '꼼수' 수법이 여럿 확인된다. 정부가 2·4 공급대책을 서둘러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도시 후보 지역의 투기 징후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이날 광명·시흥지구 취재 결과 비닐하우스만 설치한 채 장기간 방치된 토지가 여럿 확인됐다. 일부는 지난해 이후 매매된 땅이었다.
비닐하우스 뼈대만 설치된 노온사동 밭은 등기 확인 결과, 지난해 1월 7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두 매수자 중 한 명의 거주지는 서울 양천구 목동5단지였다. 뽑힌 잡목만 눈에 띄는 걸로 미뤄 농사 목적 매매로 보기 어려웠다.
노온사동 소재 1만955㎡ 밭에도 과수나무 여러 그루와 함께 검은 천막을 친 하우스가 6개 동 설치돼 있었다.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A씨는 "원래 이곳에 한 업체가 공장을 세우려 했는데 주민 반발이 심해 이전을 못한 것으로 안다"며 "비닐하우스 안에 표고버섯을 키울 나무를 가져다 뒀다더라"고 전했다.
"토지보상금 높이는 전형적 투기 수법"
주민들은 비닐하우스 역시 토지보상금을 노린 수법으로 본다. 관련법에 따르면 공공택지 사업구역 내에 농사 목적으로 설치된 비닐하우스는 땅과 더불어 추가 토지보상 대상이 된다. 특히 수년간 버섯 등을 재배하고 판매했다는 게 증명되면 영업손실보상금까지 받을 수 있다.
과거 과천 지식정보타운 등 공공택지 사업에서도 사업 발표 직후 비닐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광명시 가학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B씨는 "옛날에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위치한 비닐하우스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개발만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즘은 그나마 덜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예고됐던 투기 문제
광명·시흥지구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사전에 이러한 문제 소지를 확인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존 3기 신도시는 후보지 물색부터 발표까지 1년 이상 걸렸으나, 광명·시흥지구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후 불과 두 달 만에 공공택지로 지정됐다. 그만큼 다른 공공택지보다 준비 기간이 부족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 확대에 급급한 나머지, 기초적인 확인 절차조차 건너뛰었다고 본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급 속도와 물량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치밀한 계획이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토부가 아닌 제3기관의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공공택지사업 신뢰성을 서둘러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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