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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으로 조성한 도시라는 개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는 울산(1962년)이다. 서울 청계천 일대 무허가 판자촌 주민을 1969년 이주시킨 광주대단지(현 경기 성남시)도 따지고 보면 신도시였다.
많은 이들이 으레 떠올리는 신도시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시작된 1기 신도시다. 그 중에서도 기존 시가지를 끼지 않고 허허벌판에 세운 일산과 분당이 한국 신도시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신도시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부터 개발한 2기(판교·동탄·한강·광교·위례·운정·검단 등)를 거쳐 2018년 3기로 이어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광명·시흥지구도 정부는 3기 신도시에 포함시킨다.
노태우 정부가 사용한 신도시란 단어가 너무 익숙해졌지만 법률에 기반한 용어는 아니다. 법명에 신도시가 들어간 어떤 법률도 제정된 적이 없다. 1기, 2기, 3기란 것도 정부의 편의상 분류다.
1기와 2기 신도시 건설에 활용된 법률은 1980년 12월 태어난 택지개발촉진법이다. 여기서 택지는 '주택건설용지'의 줄임말이다. 이 법이 규정하는 택지개발지구 중 사업면적이 330만㎡(약 100만평) 이상일 경우에만 정부는 신도시란 명칭을 부여했다. 역시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그 정도는 돼야 목표하는 대규모 공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 미만은 그냥 택지개발지구다.
신도시에 대한 기대감은 끊임없이 투기를 불렀다. 1기 신도시를 조성한 1990년부터 이듬해까지 투기사범 987명이 구속됐고 이 중 131명이 공직자였다. 신도시 아파트 부정 당첨자 167명 가운데 공무원이 10명이나 포함되기도 했다.
2기 신도시와 관련해서도 2005년 투기로 공무원 27명이 적발됐다. 광교신도시 조성 때는 공적 영역 업무를 담당하는 감정평가사들이 차명으로 사들인 토지의 보상가를 부풀리다 구속되기도 했다.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비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은 전과는 결이 좀 다르다. 무섭게 오른 집값으로 ‘부동산 민심’이 폭발 직전인 시기에 터져 나왔다. 집값이 치솟기까지 정부는 다주택자와 투기를 막기 위한 규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24차례나 내놓았다. 그 결과가 이러니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정권 초기 공급이 충분해 택지개발은 없다고 자신한 정부가 신도시 카드를 꺼낸 것부터 악수의 시작이었다. 이미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택지개발촉진법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과도한 토지수용 등에 따른 부작용 때문이다. 국회에 상정한 폐지안이 통과되지 않아 지금도 법 자체는 살아 있지만 그와 관련된 사업은 현재 전무하다.
주택 공급이 절실한 정부는 대신 공공주택특별법을 근거로 3기 신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발표한 광명·시흥지구도 마찬가지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광명·시흥지구를) 올해 1월부터 검토했다”고 했다. LH 직원들이 사전 정보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뉘앙스지만 급하게 신도시를 지정했다고 인정한 셈이다.
정부합동조사단은 곧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투기가 더 많이 드러나면 그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고, 없으면 국민은 부실조사로 바라볼 것이다. 정부 스스로 자초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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