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여성 면접자 인터뷰>
남자들 기 많이 죽이고 다녔겠어?
"이력한 무관한 질문 왜 반복하나"
다른 2개 회사서도 부당한 질문
인권위 진정 검토 "기록 남겨야"
자신 향한 일각 '역비난'에도 담담
"여성들 기댈 수 있는 창구 필요"
"이런 싸움은 살면서 어떤 여성이든 겪지 않을까요. '공개적이냐 개인적이냐' 차이일 뿐이죠. 제 싸움은 이제 세상에 알려졌으니 확실하게 흔적을 남길 겁니다."
지난해 11월 20대 여성 A씨는 국내 대표 제약사인 동아제약의 하반기 공채 1차 면접이 끝난 뒤 일하고 있던 연구원 건물 계단에 앉아 30분 동안 펑펑 울었다. 당시 함께 면접을 본 남성 지원자 2명에겐 군 경험과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다. 마지막 면접 대상자였던 A씨도 군 관련한 질문을 받았지만 내용은 딴판이었다. 동아제약 측은 '군대를 가지 않았으니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느냐' 등을 물었다. A씨는 질문을 듣자마자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꿋꿋이 답했다.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임금의 정의에 반한다. 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를 부여한다면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했다. 젠더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에둘러 답한 것은 A씨 나름의 '타협'이었지만 허탈감과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몇 달 뒤 A씨는 동아제약이 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을 통해 여성용품을 홍보하고 호평을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A씨는 면접 때 겪은 일이 떠올랐고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워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A씨는 지금 동아제약 면접 후 4개월 동안 받지 못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으려고 한다. 동아제약이 당시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단순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불쾌한 질문이 아니라 '성차별적' 질문이었음을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11일 한국일보와 만난 A씨는 "여성들은 여전히 채용단계에서 차별받고 있지만, 불이익을 우려해 공개적으로 싸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자들 기 많이 죽이고 다녔겠어"
동아제약이 처음은 아니었다. A씨는 2019년 회사 두 곳 면접에서 부당한 얘기를 듣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다. 외국계 금융사 면접관은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외국계 대기업 면접관은 A씨 이력을 쭉 훑더니 "남자들 기 많이 죽이고 다녔겠어"라고 말했다.
A씨는 그때마다 단호히 대처했다. "(성희롱 당해도) 입 다물고 다니라는 거냐" "이 정도 이력에도 못 미치는 남성 지원자들이 많다는 거냐"며 반문하고 자리를 떴다. 담담하게대응했지만 허탈한 마음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A씨는 "성차별 패턴은 너무 익숙하지만, 감정은 익숙해지지 않더라"며 "두 번의 면접이 끝나고 나서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A씨는 문제제기를 위해 공적 창구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 제기를 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됐다. 평소 따르던 교수님 역시 "너만 지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렇게 참고 참으면서 세 차례의 '성차별 면접'을 겪었다. 그러나 유튜브를 통해 동아제약이 주목을 받았고, 분한 마음에 달았던 댓글이 거대한 연대로 이어지자, A씨는 '변화의 타이밍'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용기를 내고 행동하는 순간이 곧 적당한 때"라는 것이다.
A씨의 용기에 화답하듯 '동아제약 불매운동 리스트'까지 확산되는 등 많은 여성들이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A씨는 유사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을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제 이렇게 목소리를 내도 다치지는 않겠구나, 그런 확신을 더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력과 무관한 부당한 질문 왜 하나"
A씨는 문제 제기 이후 "평소보다 더 신나지도 더 힘들지도 않은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여러 비난에 대해서도 담담했다.
당시 동아제약의 해당 분야에서 여성이 더 많이 선발됐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A씨는 이에 대해 "그날 그 자리에서 유일한 여성 면접자였던 나에게 성차별적 질문이 공식적으로 들어왔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해당 직무에서 여성이 더 많이 선발됐는지 여부는 이번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동아제약 전체로 보면 남성 비율이 압도적이고, 회사 내부평가 애플리케이션만 봐도 수직적 문화는 숱하게 지적되고 있다"면서 "당시 여성이 몇 명 더 뽑혔다는 게 어떻게 성차별적 문화에 대한 반박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A씨는 자신의 '스펙'이 우수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서도 "내가 이런 스펙을 가졌으니 채용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논란이 이어진다면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A씨는 "영어권 국가에서 직무 관련 인턴십, 국제대회 영어 통역 경험, 국제 학술지에 제출한 영어 기사들, 전액 장학 교환학생 이력, 제약산업 근무 경력 중에서 틀린 내용이 있다면 동아제약이 가장 먼저 알 것"이라고 밝혔다.
"상징적 차원에서 인권위 진정 검토 중"
A씨는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동아제약으로부터 한 번도 만족스러운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아제약 측은 유튜브 댓글을 통한 A씨 폭로 다음날인 지난 6일, A씨에게 "불쾌한 질문에 사과드린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최호진 동아제약 사장은 이후 유튜브 댓글을 통해 다시 한번 사과문을 올렸고, 사내 메일을 통해선 "성차별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문"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 사과했다. A씨는 이를 두고 "불쾌, 오해라는 말로 대신할 뿐 해당 질문이 성차별이란 인정이 없다"고 말했다.
면접관이었던 당시 인사책임자는 직책 해임 및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징계 사유에도 '성차별' 언급은 없다. 동아제약 측은 정확한 징계 사유를 묻는 본보 질문에 "해당 지위에서의 업무태만, 회사 질서 문란 초래 및 직원 품위 손상"이라고 밝혔다. 동아제약 측은 또 "문제를 절감하고 있으며 사안이 심각한 만큼 임원진들을 포함해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답했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검토하고 있다. 채용단계에서의 성차별 행위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대표적 창구는 인권위 성차별시정팀이다. 면접을 거칠 때마다 "뚜렷하게 참고할 만한 선례 또는 기댈 수 있는 창구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인권위 권고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해당 질문이 성차별이라는 공적 판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12일 A씨 사건과 관련한 문답이 오갔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을 언급하며 대책을 요구하자, 이 장관은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 신설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이 장관 발언이 담긴 언론보도 링크를 공유하며 "연대하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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