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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2003년부터 연임해 8년간 브라질 대통령을 지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5)는 브라질 정치사에서 기념비적인 존재다.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는 독재정권의 노동 탄압에 반대해 노조활동가로 변신했고, 이후 정치에 꿈을 품고 3전 4기 끝에 대통령에 당선했다. "대학 학위가 없다고 비난받은 제가 인생 처음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우리나라 대통령 칭호다." 눈물 흘리던 취임일 선서가 브라질 정치사에서 그의 특별함을 웅변한다.
□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한 룰라는 3연임 금지법에 따라 퇴임할 때 지지율이 90%에 가까웠다. 서민을 살리는 대담한 평등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고 호조이던 경제가 이를 지탱해준 결과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2014년 시작된 대대적인 권력형 부패 수사에서 수뢰와 돈세탁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결국 약 9년 형을 선고받고 룰라는 2018년 4월부터 구금돼 이듬해 '최종 판결이 나온 뒤 수감하라'는 연방대법원 결정이 나올 때까지 1년 반을 복역했다.
□ 이 사건은 정치 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의심을 확인해 주듯 2019년 6월 한 탐사보도에서 룰라 사건 담당 판사가 검사들과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모의한 정황이 드러난다. 수사 검사들은 좌파 정권 재집권을 막을 궁리까지 했고 담당 판사는 룰라의 노동자당 정권이 무너진 뒤 들어선 우파 정권 법무장관에 기용됐다. 재판 자체를 취소하고 연방법원에서 새로 다루라는 최근 브라질 연방 대법관 결정이 나온 배경이다.
□ 반전을 거듭한 룰라 사건을 보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검찰 수사로 낙마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고 형 집행까지 완료됐지만 재판의 증거로 활용됐던 증언이 조작됐고 이를 위해 검사실에서 연습까지 했다는 고백이 당시 증인들에게서 나왔다. 불거진 '모해위증' 혐의를 검찰은 담당 부서를 바꿔가며 조사한 뒤 결국 무혐의 처분했지만 내부에서조차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조사로 검찰의 정치 개입 의혹이 얼마나 불식됐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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