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담금 적어 업체의 과다 사용 억제 못 해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 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시리즈의 다른 기사들과 함께 읽어주세요.
내용물보다 포장재가 더 화려해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포장재를 만드는 플라스틱이 막 써도 될 만큼 싸기 때문이다.
환경당국과 산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정가 950원인 제주삼다수 500ml의 PET병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비는 약 19원밖에 안 된다. PET병은 작은 알갱이 모양의 PET펠릿을 가공해서 만드는데, PET펠릿 1kg은 2019년 기준 평균 0.96달러(한화 약 1,086원)에 거래됐다. 삼다수의 500ml 병이 18g이니 개당 약 19.5원인 셈이다. 1,000원이면 페트병 약 55개를 만들 수 있다. 같은 기간 PP펠릿은 1kg당 평균 1.02달러(1,156원), HDPE펠릿은 0.91달러(1,031원)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싼 걸까. 우선 원료부터 터무니없이 싸다. PET의 원료는 원유로부터 정제된 파라자일렌(PX)인데, PX 1kg으로 PET 약 1.71kg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PX 가격은 가장 높았던 2018년에도 1kg당 평균 1.47달러(약 1,666원)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약 0.71달러(약 804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막대한 생산량도 제조원가를 낮춘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고정비가 분산되어 전체 비용이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5년 기준 3억8,000만 톤으로 추정된다. 안 그래도 싼 원료로 어마어마한 양을 생산해내니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신제품 플라스틱이 재활용 제품만큼 싸져 재활용 시장을 위협하기도 한다. 국제 유가가 급락했던 지난해 상반기 PET 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PP·PE는 재활용품과 신제품이 다른 용도로 쓰여 서로 경쟁하지 않지만, PET의 경우 폴리에스터 섬유 시장이 겹친다. 폴리에스터 섬유는 PET펠릿으로 만드는 합성섬유로, 외투 보온재·인형 솜·자동차 시트 등에 쓰인다.
2019년 kg당 평균 1,086원이었던 PET의 신제품 가격은 지난해 상반기 평균 약 848원까지 떨어졌다. 평균 배럴당 63.53달러였던 국제유가가 40.73달러까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당시 재활용품 가격은 kg당 약 757원이어서, 업체들 입장에서는 품질이 떨어지는 재활용품을 쓰느니 100원 더 주고 신제품을 쓰는 게 나은 상황이 되었다.
당시 PET 재활용 시장이 휘청이며 수거업체들이 폐기물 수거를 거부하는 ‘폐기물 대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퍼지기도 했다. 재생PET 판매량은 지난해 3월 약 1만7,380톤이었는데, 4월엔 한 달 만에 약 25.2%(4,383톤)가 급감했다. 재활용품 판매량이 줄어드니 재생업체에서 원재료인 폐플라스틱을 사가지 않고, 폐기물 선별장에 폐플라스틱이 처리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쌓이게 된다. 실제로 일부 수거업체들이 수거 거부를 예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의 남용을 막고 재활용품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선 플라스틱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업체들에게 부과하는 환경 부담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따라 △포장재를 만들거나 △포장재를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에 환경 비용을 부과하는데, 이 부담금이 터무니없이 적어 제도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강희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럽연합(EU)은 지난 1월부터 1kg당 0.8유로(약 1,000원)를 부과하지만 한국은 1kg당 100~200원대에 불과하다"며 "이 정도 금액으로는 플라스틱의 환경 영향을 없앨 수도, 기업의 플라스틱 감축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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