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외출 줄며 안내견 운동량 부족
사회화 교육해야 하는 예비안내견도 제약
편집자주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분야에 관심을 갖고 취재해 온 기자가 만든 '애니로그'는 애니멀(동물)과 블로그?브이로그를 합친 말로 소외되어 온 동물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심도있게 전달합니다.
코로나19로 활동량이 줄면서 (안내견) 하얀이가 살이 좀 쪘어요. 운동도 할 겸 혹시 하얀이가 캠퍼스 구조를 잊어버릴까 일부러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허우령씨
개도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온 다음 훈련을 위해 나갈 때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조심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퍼피워커 이현호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여파가 큰 이들 가운데 시각장애인이 있다.
코로나19로 사망자가 50만명을 넘어선 미국에서는 외출이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로 인해 안내견을 동반하는 시각장애인의 일상이 크게 흔들린다고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이동하고, 시각과 청각, 후각을 동원해 탐색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각장애인은 안내견과 다녀도 점자를 읽기 위해 손끝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만큼 코로나19 예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밖에 나가는 횟수가 줄면서 안내견의 업무량과 활동량 역시 줄고 있다. 예비 안내견과 이를 돌보는 '퍼피워커'도 코로나19의 여파를 받긴 마찬가지다.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4학년에 재학중인 시각장애인 파트너 허우령(24)씨와 안내견 후보견 '샛별'을 돌본 퍼피워커 이현호(47)씨 가족의 달라진 일상에 대해 들어봤다.
①코로나19 이후 활동량 줄어든 안내견
지난해 2월부터 래브라도리트리버 안내견 '하얀이'(4세?암컷)와 함께하고 있는 파트너 허우령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그만큼 밖에 나갈 기회가 사라졌고, 하얀이의 업무량과 운동량 역시 줄어든 것이다. 허씨는 "활동량이 줄면서 하얀이가 살이 조금 찌기 시작했다"며 "집에 있으면 누워만 있는 성격이라 행여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 걱정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시각장애인이 외부활동을 하는 데 있어 비장애인과 비교해 더 큰 제약이 된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최대한 사람이나 물건과 접촉하지 않아야 하는데 지하철 스크린도어나 계단, 출구, 엘리베이터 이용 시 촉각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항균 스티커가 붙은 엘리베이터 점자는 손끝으로 읽기에 둔탁해졌고, 엘리베이터 내 비치된 손소독제 역시 사용하기 어렵다.
허씨의 또 다른 걱정은 하얀이가 캠퍼스 구조를 혹시나 잊어버리는 것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허씨는 "1년 내내 비대면 수업을 하다 보니 하얀이도 강의실에 갈 일이 없었다"며 "건물 내부는 들어가보지도 못했지만 캠퍼스 구조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교내 곳곳을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할 일이 줄어든 하얀이가 지루해하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에 허씨는 "하얀이는 원래 얌전한 편이라 크게 지루해하는 티를 내지는 않는다"면서도 "밖으로 나가자고 하면 엄청 좋아한다"고 전했다. 때문에 특별히 외출할 일이 없어도 하얀이와 함께 캠퍼스 안을 도는 게 허씨의 일상이 됐다.
지난해 11월 예비 안내견의 매장 출입을 거부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롯데마트 사태 이후 달라진 점이 있을까. 허씨는 "롯데마트 사태 이후에도 털 때문에 안 된다, 손님들이 싫어한다며 거부하는 곳이 있다"며 "여전히 안내견은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허씨는 안내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채널도 열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외출하는 데 제약이 있는 건 아쉽다"면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하얀이와 함께하며 안내견에 대해 많이 알려나가겠다"고 전했다.
②더 많은 시간 보낼 수 있어 좋았지만… 눈칫밥도 늘어
2019년 11월 16일부터 지난달 14일까지 1년 3개월 동안 안내견 후보견 샛별(2세?암컷)을 돌봐온 퍼피워커 이현호씨 가족은 퍼피워킹 역시 코로나19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예비 안내견은 생후 7주부터 일반 가정집에 위탁돼 1년간 사회화 교육을 받는데 이를 퍼피워킹이라고 하며, 예비 안내견의 훈련을 돕는 자원봉사자는 퍼피워커라고 불린다.
이들이 가장 영향을 받은 부분은 역시 외출이다. 정부가 불필요한 외출자제를 당부한 데다 지난 1월에는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반려동물이 코로나19에 걸린 사례가 보도되면서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19 감염자가 늘면서 사람끼리 마주쳐도 민감해 하는 시기가 있었다"며 "반려동물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는 뉴스가 알려지면서 실제 개를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개에게 마스크를 안 씌우냐는 얘기도 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씨는 샛별과 외출 시 사람을 최대한 만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조심했다.
또 카페 등 실내공간에 들어갈 수 없는 점도 퍼피워킹에 영향을 미쳤다. 이씨는 "안내견은 시각장애인과 어디든 들어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며 "사람 많은 장소도 가봐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교육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 외에 추위와의 싸움도 과제였다. 그는 "실내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산책을 포함 장시간 외출 때마다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샛별뿐 아니라 가족들도 추위를 견디는 게 힘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좋았던 점도 있었다. 자녀들이 재택수업을 하고, 남편도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샛별과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점이다. 이씨는 "샛별이 없었다면 아이들이 실내에만 있었을 텐데 순번을 정해 산책도 시키고 운동도 했다"며 "샛별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사태 이후 이씨는 "예비 안내견을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예비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예전보단 출입을 거부하는 매장이나 버스도 많이 줄고 있다"며 "시작장애인과 안내견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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