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진 '우리 집 여기 얼음 통에'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서촌의 낡은 다세대 주택에 6년간 세 들어 살았다. 교통도 불편하고 보안도 취약한 반지하였지만, 서울 중심이라곤 믿기 힘든 싼 보증금이 큰 장점인 집이었다. 직접 페인트칠도 해가며 정이 들었지만 결국엔 쫓기듯 그곳에서 나왔다. 어느 날 새벽 만취한 남성이 창문을 열고 침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에 독립한 뒤 각종 집을 전전했다. 겨울이면 변기 물이 얼던 5평 옥탑방,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바깥 도로가 나오던 반지하, 인근 모텔의 불빛이 밤새 창문에 새들어오던 오피스텔. 서울에서 집 구하기란 마치 지뢰 찾기 같았다. 이 지뢰를 피하면 다른 지뢰가 나타났다.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형편이 나아지는 속도보다 집값이 치솟는 속도가 빨랐다. 혼자서도 얼마든 잘 살 수 있다는 다짐은 자주 무너졌고, 결혼하고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만이 지뢰밭을 탈출한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으로 내몰렸다.
사랑해서 함께 살고 싶은 것일까, 함께 살기 위해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 현대문학 3월호에 실린 황현진의 단편소설 ‘우리 집 여기 얼음 통에’는 주거 가난을 피해 사랑으로 도망친 젊은 연인을 통해 이 경계에 대해 묻는 작품이다.
유정은 1975년에 완공된 낡은 단독주택에 살았다. 그해 겨울, 유정의 집 밑을 지나던 낡은 오수관이 깨졌고 더러운 물이 스며든 인근 땅은 유정의 수도관까지 함께 얼렸다. 연인인 재호의 집으로 피신한 유정은 봄이 와서 수도관이 저절로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에 재호와 살림을 합치기로 결심한다.
작은 원룸에 살던 재호와 크고 낡은 집에 살던 유정은 함께 신축 빌라 2층을 계약한다. 하지만 서로의 집에 가끔 들르는 것과 함께 사는 일은 전혀 달랐다. 재호와 함께 변기를 쓰면서부터 유정은 변기 안쪽이 유독 때가 탄다고 느끼고, 그게 누군가의 실수 때문이 아닌 그저 두 사람이 하나의 변기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두 사람을 옥죄어 온다. 유정은 재택근무를 해야 하고 재호의 회사는 망할 위기에 처한다. 두 사람이 집을 얻기 위해 빌린 전세대출금은 2억 원이 넘었고,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400만원 언저리였다. 유정은 재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유는 사랑보다는 서로 간의 사정이 그만한 탓”이었다고.
“이대로 살다가는 금세 가난해질 거라는 가능성. 그 모든 걸 합한 무시무시한 미래가 유정을 놓아주지 않았다. 지난겨울 그토록 춥지만 않았어도 한 시절의 고비를 극복하고자 한 사람을 필요로 하는 선택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식으로 사랑이 줄줄 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산다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두려움을 두 사람이 함께"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소설은 보여준다. 나도 얼마 전 또 이사를 했다. 넓은 방에 혼자 누워 뒹구르르 몸을 굴려본다. TV에서는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사들였다는 공무원들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나는 다만 함께 누울 연인에 대해서나 생각했다. 땅값은 예측 못 할지라도, 사랑만은 예감하고 싶으니까. 그것만은 공평하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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