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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할 자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자유

입력
2021.03.15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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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정형근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피고인은 2018년 3월 7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전남 고흥군 피해자의 집 뒷길에서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남편과 피해자의 아내와 친척 1명이 듣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에게 "저것이 징역살다온 전과자다. 전과자가 늙은 부모 피를 빨아먹고 내려온 놈이다"라고 큰소리로 말하였다. 피고인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형법은 공연(公然)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를 처벌한다. 명예란 사람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는 성격, 건강, 외모, 경력, 가족관계, 전과 등을 말한다. 따라서 명예훼손은 대개 도덕적, 법적으로 비난받을 사실에 관한 것이다. 명예훼손은 공연히 행해져야 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다수인에게 사실을 적시할 때 공연히(publicly)에 해당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명예훼손 발언을 들은 자가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을 때도 공연성을 인정한다.

타인의 숨겨진 선행은 드러나도 큰 파장이 없지만, 숨겨진 사생활이 공개되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이건 절대 비밀이야! 오프 더 레코드(off-the-record)!"하면서 알리게 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이다. 누군가 취재 중인 기자에게 명예훼손 사실을 지적한 경우, 이것이 기사화되어 보도까지 되면 명예훼손죄가 되지만, 기자가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넷 개인 블로그 비공개 대화방에서 상대방이 비밀을 지키겠다는 말을 듣고 1:1로 대화했더라도 명예훼손이 된다. 이런 법원의 입장은 형법에 명시된 '공연히'라는 요건을 확대한 문제는 있지만, 피해자의 명예를 두텁게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단둘이 나눈 험담도 죄가 되니까,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 제한 문제가 생긴다. 그 때문에 위 판결 중 대법관 3명은 "앞으로 전파될 가능성이라는 추측을 처벌의 근거로 삼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했다. 학자들도 전파성 이론을 반대한다.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문제는 공직자의 정책이나 부패에 대한 비판기능을 하는 언론의 역할과 충돌된다. 언론의 비판 보도가 있을 때 공직자들은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하여 반격을 한다(전략적 봉쇄소송). 그래서 아예 이 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많다. 특히 피해자가 가해자의 범죄사실을 폭로하고 싶은데, 명예훼손죄로 처벌될까봐 망설인다고 한다. 실제로 자신의 반려견을 치료하다가 실명 위기까지 만든 수의사의 잘못을 알리고 싶었지만, 명예훼손죄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분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9인의 재판관 중 5:4로 합헌결정을 했다. 만약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위헌이라고 하면,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이나 성적지향, 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고 하였다. 반면, 4명 재판관은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 사실 적시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향후 위헌결정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논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은 민사상 손해배상 등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한다. 타인이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자유롭게 폭로한 후 돈으로 때우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상처받은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은 비인간적 발상이다. 따라서 누구도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적인 목적을 위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자유는 없다고 해야 한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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