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리츠커상에?건축가 안느 라카통·장 필리프 바살
20년 전 프랑스 건축가 안느 라카통(Anne Lacatonㆍ66)과 장 필리프 바살(Jean-Philippe Vassalㆍ67)은 작은 바닷가 마을에 집을 지어달라는 설계 의뢰를 받았다. 땅을 둘러본 두 건축가는 46그루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집을 짓는 대신 나무를 베지 않고 집 안으로 나무가 관통하게 집을 들어올렸다. 집 안 곳곳에 땅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다.
원래 있던 나무 한 그루조차 베지 않는 이 건축가들이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을 주관하는 미국 하얏트 재단은 16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2021년 수상자로 라카통과 바살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두 건축가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보존하면서도 새롭게 탄생시키는 ‘재활용 건축’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특히 도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주택 프로젝트에 힘써왔다. 1960년대 초에 지어진 17층짜리 건물의 콘크리트 파사드를 뜯어내고 유리를 활용한 발코니를 만들어 96세대의 공간을 늘리고 햇빛과 공기 등을 내부로 끌어들여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한 파리의 사회주택(2011년)이 대표적이다. 2017년에는 보르도의 530세대로 이뤄진 3동짜리 낡은 공공주택에도 발코니를 만들어 획기적으로 개조했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 당시 지어진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도 둘의 손을 거쳐 재탄생(2012년)됐다. 기존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지하 공간을 2만㎡가량 더 늘렸고, 내부 마감을 최소화하면서도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공간으로 바꿨다.
둘은 수상 직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있던 것들을 절대 부수지 않는다”라며 “원래의 것들이 갖고 있는 기억을 살피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철학을 밝혔다. 그러면서 “충분히 오래되지 않고, 여전히 쓸모 있는 것들을 우리는 쉽게 부숴버린다”라며 “새로운 시선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래의 것에서 언제나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원칙은 새 건축을 할 때도 적용됐다. 1993년 완공된 프랑스 소도시의 개인주택은 따스한 햇빛을 보존하기 위해 집을 지은 사례다. 둘은 원래 있던 햇빛과 공기, 바람마저도 존중한다. 온실처럼 얇고 투명한 패널로 지어진 집은 햇빛이 있는 그대로 집을 관통한다.
자연과 환경에 기반한 둘의 건축 철학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1970년대 후반 보르도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만난 둘은 니제르의 극심한 기후조건과 척박한 건축환경에서 원래의 것을 지키는 건축 철학을 터득했다. 1987년 프랑스로 돌아온 둘은 기존의 것을 지키는 건축의 윤리를 추구하며 “우리의 건축은 아프리카의 작은 오두막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어서 둘의 수상은 의미가 깊다. 8명의 심사위원단은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인류의 한 명으로서, 집단적 가치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라며 “라카통과 바살은 기후와 환경, 도시 문제에 대응해 많은 이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던 근대 건축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그들의 신념만큼 강하고 그들의 윤리만큼 명백하게 아름다운 건축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