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노린 고의사고냐 졸음운전이냐?
"의심스러운 정황 많지만 직접 증거 없다"
교통사고치사죄만 유죄, 금고 2년형 확정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만삭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 혐의로 8년 동안 재판을 받아 온 50대 남성이 5차례 재판 끝에 결국 살인 혐의를 벗고 금고 2년을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남성이 고의로 사고를 냈는지,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였는지 판단할 결정적 증거가 없다며 정황 증거만으론 살인죄를 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이모(51)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죄만 인정해 금고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살인을 전제로 검찰이 적용했던 보험금 청구 사기 혐의도 무죄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이씨가 살인 범의를 갖고 교통사고를 낸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건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41분쯤 아내를 태우고 승합차를 운전하던 중, 경부고속도로 천안 나들목 인근에서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캄보디아 출신 아내 A(당시 24세)씨가 숨졌다. A씨는 당시 7개월 된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그의 앞으론 95억원 상당의 보험금 지급계약이 돼 있었다.
검찰은 이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사고를 냈다고 판단해 그를 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사고 당시 이씨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아내인 A씨는 미착용 상태였다. 게다가 A씨 혈흔에선 수면유도제가 검출됐다. A씨가 잠든 사이에 이씨가 안전벨트를 풀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던 이유다. 이씨가 혼인 직후부터 A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사망보험에 여러 건 가입해 매달 400만원이 넘는 보험금을 무리해서 내고 있던 사정도 ‘정황 증거’로 제시됐다.
살인죄에 대한 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A씨 혈액뿐 아니라 이씨 혈액에서도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고, 이씨에게 범행 동기가 충분했는지 여러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은 채 병존하고 있다”며 “의심스러운 정황은 많지만 직접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2심 결과는 정반대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두 달 전, 이씨가 30억원 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등 여러 간접 증거를 종합해 판단하면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면서 살인죄 유죄와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은 이씨가 사고 직전 350m를 직진 주행한 점에 주목, 졸음운전을 했다면 그 거리만큼 직진 운행하기 힘들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7년 5월 “범행 동기가 더 선명히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살인죄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계획적 살인임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고, 범행 동기도 충분치 않다”며 이씨의 살인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졸음운전을 했다는 점은 인정해 치사죄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또, 사고 당시 차량의 주행속도·진행경로·파손상태 등을 고려할 때 ‘이씨 본인은 살면서도, A씨를 살해하기 위한 계획 범행’으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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