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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여권이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토지 투기 파문으로 악화된 여론을 돌파하기 위해 ‘부동산 적폐청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LH 사건 대응을 넘어 과거부터 누적돼온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로잡아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불공정의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여권의 적폐청산 프레임은 전 정권을 겨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014년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이 주도한 부동산 3법을 거론하며 “국민들은 누가 투기를 조장하고 방조했는지 엄격하게 봐달라”고 주문했다. LH 사태가 전 정권의 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취지다. 민주당은 LH 특검법에 대해서도 3기 신도시 외에 2013년 이후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으로 수사 대상을 넓히자는 입장이다. 부동산 적폐론을 내세워 MB 정부 때부터 파보자는 것이다. LH 사태는 과거부터 쌓여온 문제가 터진 것으로 현 정부 책임은 아니라는 함의가 깔려 있다.
□적폐청산은 1990년대 김영삼 정부가 군사 정권과 단절하고 문민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내세운 용어였다. 이후 정치권에서 한동안 쓰이지 않던 이 용어를 대대적으로 끄집어낸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였다. 당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한 박근혜 정부 책임론이 빗발치는 데 대응해 세월호 침몰은 과거 잘못된 관행의 누적된 결과라는 적폐론을 내세운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60년 적폐청산과 국가 개조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해경을 해체했지만 결과적으로 정국 돌파용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로잡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항상 해야 할 일이다. 앓던 고름이 터지자 적폐청산을 외치는 것은 평소 공부를 등한시하던 수험생이 시험이 닥치자 벼락치기 공부에 급급한 모습과 다름없다. 시대적 단절의 의미가 강했던 적폐청산이 물타기나 책임 떠넘기기 식의 정략적 의미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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