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과거에 붙들린 대학
편집자주
산업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해야 할 대학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턱없이 부족한 IT 개발자를 모셔가려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연봉을 높인다. 상아탑이 산업 흐름에 뒤처진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첨단 분야 일자리는 딱히 눈에 띄지도 않고, 학생들도 장기 비전보다는 당장 안정적인 취업 자리를 선호해서..."
22일 한 지방대 관계자의 푸념이다. 몸이 굼뜨다 해도 대학들 역시 변화의 필요성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매일매일 접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괴리는 지방대가 특히 심하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한 위기감 때문에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열망은 강렬하지만, 첨단 IT업계 자체가 수도권 지역에 편중되어 있고 일자리도 거기 있다보니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산업 인재 운운했다가는 당장 취업률부터 걱정하란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다.
정승우 군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지방대의 경우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은 건 사실이지만 학생들 스스로가 융합연계과정을 통해 새 분야를 개척하기보다 공기업이나 대기업 취업을 선호한다"며 "교육 당국의 생각과 대학 현실은 그 바탕이 되는 운동장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 교수가 '운동장이 다르다'고 하는 건 전반적인 인프라 격차를 말한다.
우선 지방대가 자체적으로 커리큘럼을 바꾸려 해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지역 사립대의 한 교수는 “수도권 학생들은 기업 쪽과 연계해 직무 중심의 취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지방에서는 그런 인프라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역의 산업체와 계약해 맞춤식 직업교육체제를 교육과정에 도입하려 해도 지역 내 계약을 맺을 만한 기업 풀도 변변치 않다. 대구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구만 해도 제법 큰 도시인데 학생들이 꿈꾸는 대기업은 거의 없고 자동차 부품회사 정도가 큰 기업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이공계 대학원 역시 지방대의 경우 함께 프로젝트 작업을 할 기업들 자체가 부족하다.
그러니 남는 건 취업률 평가다. 취업 담당 교수들은 진로가 불확실한 학생들에게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회사를 추천하거나, 학생에게 나름의 계획이 있다 해도 단기간 취업이 어렵다면 금방 취직이 가능한 회사를 추천하게 된다. 신산업 전망에 따른 장기적 비전 같은 건 돌아볼 여유가 없다.
취업률은 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해 지방대들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올해 신입생 최종 등록률이 지난해보다 19%포인트나 떨어진 대구대는 총장 직위해제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지방대가 지원자들에게 내밀 수 있는 카드는 결국 또다시 취업률이다.
취업률 때문에 장기비전은 밀려나고 장기비전이 없으니 당장의 취업률에 도움이 안 되는 과목이나 학과는 빨리 없애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방대로서는 다소 어렵지만 비전이 있는 빅데이터 학과 등을 만들어 놓고 버틸 것이냐, 아니면 지금 상태에서 취업에 적당히 유리한 과를 유지시키면서 일단 취업률이라도 끌어올리느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며 "결국 장기적 전망이나 지역 여론이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취업률 지표 충족을 위해 손쉬운 선택을 반복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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