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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재현된 '5·18'의 비극... 그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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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재현된 '5·18'의 비극... 그 결정적 장면들

입력
2021.03.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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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으로 남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놀랍도록 흡사한 미얀마 사태의 참상

6일 미얀마 양곤 시내에서 총을 든 경찰들이 시민을 곤봉으로 폭행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시내에서 군인이 쓰러진 시민을 향해 곤봉을 내리치고 있다. AP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일 미얀마 양곤 시내에서 총을 든 경찰들이 시민을 곤봉으로 폭행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시내에서 군인이 쓰러진 시민을 향해 곤봉을 내리치고 있다. AP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일 미얀마 양군에서 무장 경찰들이 젊은이들을 연행하고 있다(위).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장 군인들이 시민들을 거칠게 끌고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일 미얀마 양군에서 무장 경찰들이 젊은이들을 연행하고 있다(위).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장 군인들이 시민들을 거칠게 끌고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손을 뒷머리에 올린 채 연행되고 있다(위).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장군인들이 시민들의 옷을 벗긴 뒤 연행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손을 뒷머리에 올린 채 연행되고 있다(위).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장군인들이 시민들의 옷을 벗긴 뒤 연행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월 28일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방패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시내에서 총을 어깨에 멘 공수부대원들이 도열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월 28일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방패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시내에서 총을 어깨에 멘 공수부대원들이 도열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총을 멘 군인들이 길바닥에 쓰러진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더 이상 항거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거칠게 끌고 간다. 군경의 유혈 진압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 유가족은 오열하고,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군부독재 타도를 외친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흑백 사진으로 기록된 역사적 장면들이 41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에서 재현되고 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군경의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는 현장. 미얀마 주요 도시 곳곳에 시위대가 만든 바리케이드 등 각종 저항의 흔적들이 쌓여가고,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과 유족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5·18 광주'를 겪은 우리 국민들에게 군부 쿠데타에 맞서는 미얀마 시위대의 모습은 '남의 일' 같지 않다. 매일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참상을 지켜보면 5·18의 비극이 떠오른다. 미얀마 국민들도 SNS를 통해 광주의 역사와 미얀마 현지 상황을 비교하며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13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수 많은 시민들이 반군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3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수 많은 시민들이 반군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3일 미얀마 양곤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택시와 버스 트럭이 반 독재 시위에 가담해 도로를 가득 매우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3일 미얀마 양곤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택시와 버스 트럭이 반 독재 시위에 가담해 도로를 가득 매우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시공을 초월해 비슷한 장면으로 겹쳐진 두 장의 사진처럼, 미얀마 사태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그 출발과 진행과정이 비슷하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달 '총선 조작'을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후 시민들의 반 쿠데타, 민주화 촉구 시위가 한 달 이상 이어 오고 있다. 5·18 역시 1979년 '12·12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이에 항거하는 학생 시민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총칼을 앞세운 군부의 무력 진압 또한 미얀마와 광주의 공통점이다.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 반군들과 교전을 이어 온 부대를 비롯해, 지난 2007년 반정부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한 부대까지 동원해가며 무차별 총격과 폭행, 고문을 자행하고 있다.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7공수여단을 광주에 투입해 시민들을 학살한 역사가 미얀마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2일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 군인들이 시내도로를 달려가고 있다(위). 1980년 5월 총을 맨 군인들이 도심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2일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 군인들이 시내도로를 달려가고 있다(위). 1980년 5월 총을 맨 군인들이 도심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일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 경찰이 시민을 연해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을 맨 군인이 시민을 끌고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일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 경찰이 시민을 연해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을 맨 군인이 시민을 끌고 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군경의 무력 진압은 무고한 희생을 양산하기 마련,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에 따르면 쿠데타 발생 이후 누적 사망자는 250명을 넘어선다. 시간이 흐를수록 군경의 무차별 총격이 시위대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뤄지고 있어 인명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5·18 당시 광주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사망자 193명, 행방불명 48명으로 집계됐지만, 암매장 등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실제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위 가담자뿐 아니라 지역 내 모든 시민들을 군법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계엄령이 선포된 점도 비슷하다. 미얀마 군부는 최대 도시 양곤 내 다수 지역에 계엄령을 발동하고 시민들을 통제, 탄압하고 있다. 계엄령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데다 안전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닥치자 시민들은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시내 도로 위엔 차량과 오토바이, 삼륜차 등에 가재도구를 싣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시민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진다. 5·18 당시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임박하자 손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피난'을 가는 광주시민들의 모습도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16일 미얀마 양곤 일부지역에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가재도구를 차량에 싣고 이동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손수레에 짐을 싣고 '피난'을 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6일 미얀마 양곤 일부지역에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가재도구를 차량에 싣고 이동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손수레에 짐을 싣고 '피난'을 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군경의 유혈진압에 숨진 시신 앞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유가족들이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군경의 유혈진압에 숨진 시신 앞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유가족들이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5·18의 비극이 광주 지역에 한정됐던 것과 달리 미얀마 사태는 수도 네피도를 포함해 양곤, 만달레이 등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위에 가담하거나 동조하는 계층도 대학생부터 노동자, 스님, 교사, 공무원을 아우르면서 전 국민적인 저항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40여 년 전 전두환 정권이 모든 언론과 통신을 차단하는 등 광주를 봉쇄한 탓에 비극적인 상황이 외부로 즉각 알려지지 않은 데 비해,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미얀마의 참사가 연일 세계 각국으로 전해지고 있는 점에서 미얀마와 광주는 다르다. 쿠데타 초기부터 미얀마 군부는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 사실을 알리려는 시민들의 의지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미얀마 반 군부 시위의 동력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 억압에 맞서지 않으면 쿠데타 이전 경험한 민주적 삶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5·18을 비롯해 힘겨운 민주화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이 국정농단에 맞서 촛불을 들어 올린 것처럼.

3일 인도 뉴델리에서 미얀마 주민들이 군부와 시진핑 중국 주석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많은 시민들이 도청 광장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3일 인도 뉴델리에서 미얀마 주민들이 군부와 시진핑 중국 주석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많은 시민들이 도청 광장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6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위대가 군경 진입을 막기위해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다(위).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도심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16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위대가 군경 진입을 막기위해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다(위).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도심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2월 28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위대가 쓰러진 트럭에 올라가 세 손가락을 한 채 팔을 치켜들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들이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2월 28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위대가 쓰러진 트럭에 올라가 세 손가락을 한 채 팔을 치켜들고 있다(왼쪽).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들이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한국일보 자료사진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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