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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르포]중국에서 시노팜 백신 직접 맞아보니... "집단면역 만리장성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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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르포]중국에서 시노팜 백신 직접 맞아보니... "집단면역 만리장성 쌓자!"

입력
2021.03.24 13:00
수정
2021.03.24 20:5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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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묻자 "사흘 음주, 하루 샤워 피해야"
中 외교부, 외신기자 100여 명 대상 백신 접종
따끔하고 순식간에 끝나, 여느 백신과 비슷해
동의서, 면책 승낙서 제출 "접종은 본인 책임"
주중대사관 한국인 접종 '0', "본인 선택 사항"
애타는 교민들, "정부가 속히 방침 정해달라"



베이징 주재 외신기자들이 중국 외교부 주선으로 23일 시노팜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규획예술관 내부. 입구 안쪽 양편에 방호복을 입은 30여 명의 의료진이 접종자 신분을 확인하면서 문진 내용이 적힌 접종 동의서에 서명을 받고 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베이징 주재 외신기자들이 중국 외교부 주선으로 23일 시노팜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규획예술관 내부. 입구 안쪽 양편에 방호복을 입은 30여 명의 의료진이 접종자 신분을 확인하면서 문진 내용이 적힌 접종 동의서에 서명을 받고 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왼팔 내미세요.”(중국 의료진)
“…...”(잠시 침묵)
“끝났나요?”(기자)


답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 여성 의료진은 무심한 표정으로 소독약 묻은 면봉을 접종 부위에 문지르고 있었다. 앞에 멀뚱멀뚱 서있는 남성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마스크 너머 눈빛으로 빨리 나가라고 신호를 보낸다. 23일 중국 베이징에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은 그렇게 순식간에 끝났다.

“사흘간 음주 금지, 24시간은 샤워하지 마세요”

접수를 마친 기자가 영문과 중문으로 된 접종 동의서를 들고 접종소로 이동하고 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접수를 마친 기자가 영문과 중문으로 된 접종 동의서를 들고 접종소로 이동하고 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이날 접종은 차오양공원 내 규획예술관에서 진행됐다. 실내 전시장에 칸막이를 치고 공간을 나눠 임시 백신 접종소로 사용하는 곳이다. 검색대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니 전신 방호복을 입은 30여 명의 의료진이 호텔 프런트처럼 양편으로 길게 펼쳐진 책상에 앉아 있었다. 여권과 기자증을 확인하고 영문과 중문으로 기재된 접종동의서에 서명하는 일종의 접수처다. 신체 이상 여부를 묻는 질문지의 10가지 항목에 모두 일사천리로 ‘No’라고 체크하는데도 누구 하나 꼼꼼히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의료진 한 명이 “오늘은 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화살표를 따라 코너를 돌아가니 알파벳 A, B와 일련번호가 쓰인 부스가 한쪽 면에 18개씩 총 36개 설치돼 있었다. 안내를 받아 A6 앞에 서 있는데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북한 조선중앙통신 기자들도 웅성거리며 앞으로 지나갔다. 중국 측 관계자는 “백신 접종에 한국 특파원을 포함해 100명이 훌쩍 넘는 베이징 주재 외신기자들이 몰렸다”고 귀띔했다.

접종소는 초음파 검사실을 연상케 하는 좁은 방이었다. 앞서 작성한 접종동의서와 신분증을 내밀자 의료진은 노트북에 인적 사항을 입력하고는 작은 냉장고 안에서 백신을 꺼냈다. 상표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시노팜 백신”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시노팜은 중국 최대 제약회사다.

웃옷을 벗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 따끔하더니 이내 통증이 가셨다. 함께 방 안에 있는 의료진 두 명은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나가길 바라는 눈치다. 예상했던 것보다 싱겁게 끝난 듯싶어 ‘접종 후 주의사항’을 다시 물었다. 의료진은 “앞으로 사흘간 술을 마시지 말고, 매운 음식도 먹지 말고, 24시간 동안 목욕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접종 후 30분 관찰, 벽에는 ‘집단 면역’ 구호

중국 주재 외신기자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소를 드나드는 모습. 양편에 A와 B로 나뉘어 각각 18개씩 총 36개의 부스가 마련돼 있다. 차례가 되면 좁은 방 안으로 들어가 접종하는 방식이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중국 주재 외신기자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소를 드나드는 모습. 양편에 A와 B로 나뉘어 각각 18개씩 총 36개의 부스가 마련돼 있다. 차례가 되면 좁은 방 안으로 들어가 접종하는 방식이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접종을 마친 의료진은 동의서 상단에 두 가지 숫자를 적었다. 접종 시간과 귀가할 수 있는 30분 후 시간이다. 동의서를 받아 들고 임시통로를 지나 옆 건물에 있는 ‘관찰구역’으로 향했다. 널찍한 방에는 접종을 끝낸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벽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질서정연한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의 장벽을 쌓자’는 구호가 선명했다. 이곳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베이징 시민들을 독려하는 문구다.

꽤 시간이 지났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문 앞에 서 있던 진행요원은 동의서를 보여달라고 했다. 앞서 의료진이 적은 시간을 보더니 “좋다”고 손짓했다. 30분이 지났다는 의미다. 중국산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이 모두 끝나는 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접종 부위가 벌레에 물린 듯 약간 따가웠다. 두 시간쯤 지나 저녁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느 주사를 맞을 때와 다른 느낌은 딱히 없었다. 물론 앞으로 며칠간 지켜봐야 하고, 아직 2차 접종이 남았기 때문에 속단하긴 이른 상황이다. 중국인 지인은 “1차 접종을 하고서 어깨와 등이 아파 2차 접종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체감하는 백신 접종의 강도가 각자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24일 아침에 잠에서 깨니 접종 부위가 전날보다 더 따끔했다. 초등학생 때 맞은 ‘불주사’가 떠올랐다. 다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수준은 아니었다.

“외신기자들, 원하면 백신 맞아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각국 외신기자들이 별도 건물에 마련된 관찰구역에 모여 대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30분이 지나야 귀가할 수 있다. 이날 이상 반응을 보인 접종자는 없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각국 외신기자들이 별도 건물에 마련된 관찰구역에 모여 대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30분이 지나야 귀가할 수 있다. 이날 이상 반응을 보인 접종자는 없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중국 외교부는 지난 17일 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본인이 원하는 경우 자비 부담을 원칙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고 알려왔다. 접종 신청서와 동의서, 면책 승낙서, 소속회사 직인이 찍힌 공문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접종 1회당 90위안(약 1만5,580원)을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접종은 3주 후인 4월 13일로 잡혔다. 이와 달리 중국 일반인들은 무료로 백신을 맞고 있다. 24일 기준, 중국 내 코로나19 백신 누적 접종 횟수는 8,284만6,000건에 달한다.

접종에 앞서 외교부가 배포한 안내문에는 6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중국산 코로나19 불활화 백신이 비교적 안전하지만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보장할 수 없음 △접종 전 신체 상태를 보건요원에게 말하고, 접종 후 30분간 머물며, 몸이 불편할 경우 즉시 알릴 것 △접종 후 14일간 모니터링하면서 부작용이 심한 경우 베이징협화병원을 찾아 진료받을 것 △최소 21일 간격으로 두 번째 접종을 하고 6개월 이내에는 다른 브랜드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말 것 △어떤 백신도 100% 효과적이지 않으니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 일상 방역지침을 준수할 것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 단기 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니 필요하면 상담할 것 등이다. 백신 접종 이후의 상황은 오롯이 본인 책임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주중대사관 한국인 145명 가운데 백신 접종 ‘0’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나흘 전에 기자가 중국 외교부에 제출한 '면책 승낙서'. 사전 공지된 주의사항을 읽었고, 접종 현장에서 건강상태를 제대로 알릴 것을 약속할 뿐만 아니라 접종에 따른 모든 위험은 오롯이 본인이 감수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나흘 전에 기자가 중국 외교부에 제출한 '면책 승낙서'. 사전 공지된 주의사항을 읽었고, 접종 현장에서 건강상태를 제대로 알릴 것을 약속할 뿐만 아니라 접종에 따른 모든 위험은 오롯이 본인이 감수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중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통보 배경이 궁금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주재 외교사절 대상 접종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면서 “각국 외신 기자들의 문의가 많고 취재활동에도 필요하다고 판단돼 접종을 허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온도 차가 있었다.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대사관의 경우 수개월째 한국인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한국 외교부와 질병관리청에서 재외공관에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사관에는 △외교관과 각 부처 파견 주재관 등 공관원 82명 △한국인 행정직원 63명 △중국인 행정직원 90명(지난해 10월 기준)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 중국인 행정원을 제외하고는 선뜻 백신을 접종하길 꺼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설명이 무색한 대목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각자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주민도 접종하세요”… 전날 돌연 ‘불가’ 변경

지난달 중국 베이징 아파트 주민위원회에서 외국인 포함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배포한 자가진단리스트. 온갖 기저질환을 묻는 항목 맨 아래 13번에 '공복자'는 유독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반드시 식사를 하고 백신을 맞으러 오라는 의미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지난달 중국 베이징 아파트 주민위원회에서 외국인 포함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배포한 자가진단리스트. 온갖 기저질환을 묻는 항목 맨 아래 13번에 '공복자'는 유독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반드시 식사를 하고 백신을 맞으러 오라는 의미다. 베이징=김광수특파원


당초 코로나19 백신을 한 달 전인 지난달 23일 접종할 뻔했다. 베이징 아파트마다 구성된 주민위원회에서 이보다 닷새 전인 18일 공지를 통해 “외국인을 포함한 일반인 접종이 가능하니 속히 예약하라”는 공지가 떴다. 하지만 접종 전날인 22일 밤 돌연 방침이 바뀌었다.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거주자를 제외한 외국인은 의료시스템에 인적 사항 입력이 안 돼 당분간 접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민 대표는 “언제 접종이 가능할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며 “당국의 새 지침이 정해지면 바로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상당수 중국 교민들은 답답한 심정이다. 주변에서는 백신 접종 행렬이 이어지는데 한국 정부는 아무런 설명 없이 머뭇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백신 여권’을 들먹이며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교민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 교민은 “한국에서 백신을 들여오든, 여기에서 접종하든 대사관에서 속히 방침을 정해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기준, 중국 거주 교민 규모는 베이징 7만5,000명을 포함해 총 30만 명에 달한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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