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둑, 한국!" 김치와 한복, 판소리, 온돌까지 한국의 전통을 중국의 고유문화라 윽박지르는 중국 네티즌들의 억지와 행패는 30년 전부터 있었다. 중국의 소수민족을 연구해온 인류학자 김인희 연구원은 1994년부터 10년 넘게 머물렀던 중국 유학 시절 이들을 처음 만났다. 그들은 다짜고짜 다가와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고 훈계조로 가르치거나, 중국의 위대함을 설파하며 놓아주지 않았다. 중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이른바 분노청년이라 불리던 중국판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등장이었다.
“분노청년을 이해하지 않고선 중국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김 연구원은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에서 갈수록 도를 넘어서는 중국의 막무가내 애국주의의 본질과 이면, 그 계보를 추적한다. 중국의 극우 세력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연구가 드물었단 점에서 책은 단연 눈에 띈다. 김 연구원의 소속은 동북아재단이다. 하지만 저자 프로필에 적혀 있지 않다. 분노청년들의 타깃이 될 걸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기반으로 활동하는 분노청년은 중국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개인, 집단에 좌표를 찍어 댓글 공격 등 테러를 퍼붓는 것으로 유명하다.
분노청년은 1990년대 처음 등장했지만, 뿌리는 1960년대 홍위병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오쩌둥의 착한 아이들’로 불렸다가 용도 폐기당한 그 친위대 맞다. 나이나 활동방식, 숭배, 배척 대상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두 집단의 핵심적 특징은 고스란히 대물림됐다. 중화주의란 강력한 사상적 무기로 무장했고, 지도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점도 닮았다.
홍위병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마오가 당권파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오기 위해 조직한 정치 지원군이었고, 분노청년은 천안문 사태 이후 위기에 직면한 공산당이 타개책으로 내놓은 애국주의 물결을 타고 길러진 세력이었다. 1990년대부터 중국은 사회주의를 주입하던 이른바 관수법(머리에 사상을 들이붓고 닫아 버린다)이란 세뇌교육으로 애국주의 교육을 강도 높게 펼쳐왔다.
그 계보는 이제 소분홍(처음 등장한 홈페이지 색깔이 분홍색이라 붙여진 이름)에서 폭발한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인 소분홍은 한마디로 ‘시진핑 키즈’다. 소분홍의 화력은 전례 없이 막강하다. 태어날 때부터 관수법의 수혜자였던 이들은 아이돌을 쫓아다니던 실력으로 ‘팬덤 애국주의’를 창출했다. 고학력자 엘리트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소분홍은 탄생부터 조직적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공청단 중앙위원회가 중국을 홍보하는 인터넷 자원봉사자 모집을 계기로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공청단이 웨이보에 지령을 내려 프레임을 짜면 이들은 벌떼 같이 공격에 나선다. 공산당이 기획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의 개입이 더욱 노골화한 것.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대단히 많이 퍼져 있다”는 게 중국 지식인들의 전언이다.
시진핑은 소분홍의 대부다. ‘중화민족이 세계 중심에 우뚝 선다’는 중국몽을 새로운 땔감으로 던지며 소분홍의 ‘애국’ 폭주를 부추기고 있다. 분노청년이 활개칠 때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자유주의파 지식인들이 문화대혁명 시대에 버금가는 시진핑 정권의 사상 통제로 숨죽이게 되면서 내부 자정 기능이 사라진 것도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결국 중국에서 애국은 공산당의 영도를 따르는 애당이다. 김 연구원은 중국 애국주의의 근본은 "말 잘 듣는 충실한 인민을 길러내는 정치 프로젝트"라고 진단한다. 소분홍의 활동을 중국판 일베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소분홍이 한국을 가장 많이 공격하고 있단 사실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국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려 드는지 속내를 말해줄 시그널로 읽힐 수 있어서다. 김 연구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낯선 중국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홍위병과 분노청년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무자비한 폭력과 내부 권력 다툼으로 골칫덩어리가 돼버린 홍위병은 얼마 가지 않아 버려졌다. 마오쩌둥은 이들을 도시에서 추방시켜 농촌으로 보내버렸다. 저급한 막말과 폭력 시위를 일삼은 분노청년 역시 상식 있는 중국인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힘을 잃었다. 소분홍의 운명을 당장 점치긴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는 말해준다. 권력자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맹목적 지지는 권력과 그를 따랐던 대중 모두 찌르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진실을. 21세기판 홍위병들에 취해 있는 모든 권력자들이 깊이 새겨야 하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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