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자녀 가진 두 엄마의 이야기
"임신 때 뭘 잘못했나" 처음엔 못 받아들여
진단-수술-성별정정서 마주한 편견과 폭력
"트랜스젠더 가시화가 중요, 계속 싸울 것"
<3·끝> 두 엄마 이야기
두 엄마가 있다. 한 엄마는 TV에 나온 성소수자 퀴어 축제를 보며 “왜 저런 걸 해?”라고 말했었다. 다른 엄마는 자신이 여자라고 커밍아웃한 ‘아들’에게 “사람들이 너를 여자로 볼 것 같아?”라며 모진 말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존재조차도 잘 몰랐던 두 사람.
그런데 4년 전 갑자기 낯선 세계에 들어섰다. 아이가 트랜스젠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거쳐 성별정정을 하기까지의 여정에 동행하게 된 것. 두 어머니가 그 지난했던 시간을 들려줬다.
첫 번째 산 _ “여기는 ‘그런 쪽’ 상담은 안 해요”
2017년, 스무 살 ‘아들’의 커밍아웃을 받은 메이(활동명·56)씨가 처음 찾은 곳은 동네 정신과의원이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면 좋아지는 건지, 의사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질문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런 쪽’ 상담은 안 해요. 다른 병원에 가 보세요.” 의사에게 들은 건 이 말이 전부였다. 상담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메이씨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알음알음 상담이 가능한 정신과를 알게 됐다. 여러 번의 상담과 몇 시간에 걸친 설문지 검사 끝에 내려진 진단 결과는 ‘성 주체성 장애’.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단어가 주는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2018년 국제질병분류(ICD)를 개정해 '성별 불일치'라는 용어로 바꿨지만 우리나라 정신의학협회에서는 바뀐 용어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었지만 아이 스스로 느끼는 성은 여성, 트랜스젠더였다.
두 번째 산 _ 가로등조차 없는 낯선 세계
‘내가 임신했을 때 뭘 잘못 먹었나.’ 처음 든 생각이었다. ‘원인’을 찾아 자책했다. 충격과 혼란은 분노와 원망으로 번졌다. “너 여장하고 밖에 한번 나가 봐. 사람들이 너를 여자로 볼 것 같아?” 아이에게 상처를 줬다.
“아들로 알고 있던 애가 하루 만에 여자가 된다고 하니 충격이 너무 컸어요. 제가 초중고 다닐 때 누구도 성소수자에 대해 말해준 적도 없었고, 무지해서 상처주는 말을 했고요. 죽을 때까지 아이에게 사과해야죠.”
막 낯선 세계에 발 디딘 이들을 위한 안내서는 없었다. 이 곳이 어떤 곳이며, 선택지는 무엇인지, 어느 길을 따라가면 안전한지 알려주는 곳도, 사람도 없었다. 길잡이는커녕 가로등조차 없는 암흑의 세계였다.
스물다섯 트랜스젠더 여성인 딸을 둔 어머니 물(활동명·50)씨도 이 암흑에서 헤맸다. “암에 걸리면 어떤 수순으로 치료받고 누가 권위자인지 등 의료 정보가 많잖아요. 하지만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정보를 구하지 못해 진단을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어요. 2017년 말부터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가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와 절차를 알게됐고, 진단 후 1년 반이 지나서야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어요. 사회적으로 정보가 많았다면 치료가 지연되지 않았을 거예요.”
세 번째 산 _ 숨어버린 사람들, 증발되는 정보
성확정 수술은 7, 8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이다. 통계 등 객관적인 정보와 수술 후기조차 얻을 수 없다면 결정은 더 어렵다.
물씨가 그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곳은 부모모임에서 만난 다른 부모와 당사자, 성소수자 인권단체였다. 하지만 트랜지션 전체 과정과 성확정 수술에 대한 세세한 의료정보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아이는 “트랜스젠더 당사자 커뮤니티가 딱히 활성화된 곳이 없다”고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많다보니 트랜스젠더 수술과 성별 정정을 받고 나면 커뮤니티 활동을 중단하고 정정된 성별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의료정보 등 꼭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거죠.”(물씨)
편견은 이들을 숨게 하고, 정보의 축적과 공유를 막는다. 구체적인 의료 정보와 생생한 목소리가 만나 사회적 자산으로 쌓여 또 하나의 의료 과정, 삶의 방식으로 자리매김할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이다.
결국 물씨는 깊은 고민 끝에 태국에서의 수술을 택했다. “우리나라는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낮아 입원부터 회복까지의 과정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아픈 경험이 될까봐 염려됐어요. 국내에서 수술받은 당사자들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성 확정 수술을 하는 병원도 드물고 수술 경험도 쌓이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부족한 정보, 적은 수술 경험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들을 밀어내기만 했다.
네 번째 산_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자격
마지막 관문은 성별 정정. 법원에 낸 성별 정정 허가 신청이 받아들여져야 법적인 성별, 즉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숫자가 바뀐다.
한국 법원은 성확정 수술을 해야만 성별 정정을 인정하는데, 수술 범위가 불분명해 정정 여부는 법원마다 다르다고 한다. 메이씨는 “트렌스젠더 남성은 건강 상의 이유 등으로 대부분 유방, 자궁 적출술만 하고 성기 재건술은 하지 않고 법원에 신청 서류를 내는데, 같은 서류를 어떤 법원은 기각하고 다른 법원은 정정을 허가해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장 면담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메이씨의 자녀는 성별 정정 허가를 신청한 후 심문기일을 기다리고 있다. “정정 신청을 할 때 수술 확인서, 진단서, 소견서 등 모든 서류를 첨부했는데도 굳이 대면해서 봐야 한다는 데서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사법기관의 오만함이 느껴져요. 여성으로 바꾸길 희망하면 긴 머리에 치마를 입고 가야 인정해줄 것 같잖아요. 법원장 마음에 들게 꾸미고 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법원이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메이씨)
성확정 수술은 위험이 따르고, 모든 트랜스젠더가 수술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진단과 호르몬 치료만으로는 성별 정정이 불가능한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실제 정신과 진단과 호르몬 치료만으로도 성별이 정정되는 국가들도 많다.
물씨의 아이는 성별 정정을 마쳤고, 메이씨의 아이는 앞두고 있다. 고단한 여정의 끝에 선 두 엄마. 숨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내 자식이 수술, 성별 정정 마쳤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아예 없는 사람처럼 취급될 테고, 사회는 제도 개선을 위해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엄마·아빠들이 사회와 싸울 테니, 우리 아이뿐 아니라 당사자들은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잘 살아가길 바라요.”(메이씨)
“처음엔 우리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부모모임에 나갔지만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해 알게 되면서 가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올바른 정보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계속 활동할 거예요.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잔인함이 소멸되고 이들의 안전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도록 부모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낼겁니다.”(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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