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수 '미조의 시대'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대학에 다닐 때 ‘예술의 말과 생각’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저명한 인문학자인 교수님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샤갈, 베토벤과 타르코프스키에 대해 들려주는 인기 교양 강좌였다.
늘 그랬듯 그때도 최악의 취업난으로 대학생들은 구직에 여념이 없었다. 교수님은 첫 수업에서 예술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스펙 쌓기에만 열중인 요즘 대학생들에 대해 통탄했다. 그 순간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와 내 친구들이 전시 대신 토익 점수에, 공연 대신 알바에 몰두하는 게 예술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교수님이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엉엉 울었다. 예술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과 돈이 없다는 깨달음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악스트 35호에 실린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를 읽으며 나는 그때 그 비참했던 버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미조와 그 주변인들이 처한 상황은 아무래도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아픈 엄마와 단 둘이 사는 미조는 여러 회사에서 경리로 일했지만 현재는 마땅한 일이 없는 상태다. 살고 있는 전셋집에서는 곧 쫓겨나게 생겼는데 보증금 5,000만원으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이라곤 반지하뿐이다.
중증 우울증 환자인 미조의 엄마가 종일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시를 쓰는 게 전부다. 지인인 수영 언니는 웹툰 작가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여성을 감금하는 내용의 성인 웹툰 회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한다. 오빠인 충조는 10년 동안 공시생으로 살다가 지금은 단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다.
영 보잘것없고 나아질 기미도 딱히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에도, 예술은 깃들어 있다. 엄마는 귀가한 미조에게 매일 “떡집에서 못 팔고 버린 떡 같은 하루”라고 쓴 자신의 시를 읽어준다. 수영 언니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게 너무 걱정”이고, 충조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밤이면 빛으로 번쩍거리는 공단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무엇보다 미조는 “나가서 폐지를 줍는 게 낫지”라며 자책하는 엄마에게 “잘 쓰잖아” 하고 격려한다. 엄마가 시인이, 수영 언니가 작가가, 충조가 관객이, 미조가 후원자가 아닐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예술이 ‘그런 것’만은 아니고, 예술은 ‘이런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뛰쳐나오고 싶었던 그 수업은 꾹 참고 들은 끝에 A+를 받았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서야 교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예술이 ‘그런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땐 괜한 열등감 탓에 많은 어른들을 오해했다. 그 수업 덕에 주변 예술에 눈 밝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그 교수님의 심정으로, 이 소설 ‘미조의 시대’, 그리고 얼마 전 사망한 여성 인디 뮤지션 도마의 노래를 널리 알리고 싶다. 어디에 있건 당신들의 예술이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기다리는 독자와 관객이 여기에 있으니.
“나지막한 네 목소리도 부드러운 손길/또 고운 눈길도 없지만/웃음 짓는 얼굴, 웃음 짓는 그 얼굴도 없지만/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앉아 있는 일/그냥 여기서 널 기다리는 일”(김도마 ‘너 가고 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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