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비긴 어게인' 등 국내 소개한 '미다스의 손'
영화 수입은 로또에 가깝다. 스타가 출연하고 볼거리가 많은 대작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직접 배급을 하곤 한다. 국내 영화사가 해외 화제작을 가져올 기회는 적고 경쟁은 치열하다. 외화로 잇달아 ‘잭팟’을 터트린 경우는 드물고도 드물다.
영화사 판씨네마는 예외다. ‘트와일라잇’(2008) 시리즈와 ‘노예 12년’, ‘비긴 어게인’(2013), ‘라라랜드’(2016) 등을 수입해 흥행시켰다. 재미동포 2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0) 역시 판씨네마가 국내에 들여온 작품이다. 영화 수입의 ‘미다스의 손’이라 불릴 만한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를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필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굉장한 영화광”을 자부하는 백 대표는 1990년대 후반 영화 웹사이트 씨네서울을 열며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전공인 컴퓨터공학과 취미를 접목한 사업이었다. “박찬욱 감독 영화(‘올드보이’)에 투자하기도 하고 영화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하다” 2003년 판씨네마를 설립하며 영화 수입에 뛰어들었다. 첫 수입 영화는 프랑스의 ‘우리의 릴리’(2003)였다. 판씨네마가 18년 동안 수입한 영화는 118편이다. 백 대표는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0% 정도”라고 말했다.
①시나리오도 안 보고 산 '트와일라잇'
초창기엔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2002), ‘영 아담’(2003) 같은 유럽 영화를 주로 수입했다. 회사 기반을 다지게 한 영화는 ‘트와일라잇’이다. “처음 재미를 본 영화”이긴 한데 수입 확정 당시엔 “덜컥 겁이 났던” 작품이다. 감독도 배우도 채 정해지지 않았고,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구매했다. 믿는 구석은 있었다. 동명 원작 소설이 어렵사리 출간해 북미 등에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뭔가 있다”는 감이 작동했다. “뱀파이어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백 대표 취향도 한몫했다. ‘트와일라잇’은 한국에서만 135만 관객을 모았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해 4편까지 만들어졌다.
‘라라랜드’와 ‘비긴 어게인’ 역시 ‘트와일라잇’처럼 배우 캐스팅이 결정되기 전 손에 넣은 영화다. ‘라라랜드’는 에마 왓슨과 마일즈 텔러가 출연 물망에 올랐고, ‘비긴 어게인’은 스칼릿 조핸슨이 주연으로 거론된 정도였다. ‘라라랜드’는 이후 에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으로, ‘비긴 어게인’은 키이라 나이틀리로 주연배우가 바뀌었다. 백 대표는 “‘라라랜드’는 ‘위플래쉬’(2014)를 만든 데이미언 셔젤 감독 신작이고, ‘비긴 어게인’은 ‘원스’(2006)를 연출한 존 카니 감독 신작이니 좋은 영화가 나오리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②'비긴 어게인' 국내 흥행이 전 세계 1/3 차지
‘비긴 어게인’은 한국에서 유난히 흥행에 성공했다. 전 세계 극장 매출(6,798만 달러) 중 약 32%(2,217만 달러)가 한국에서 발생했다. 백 대표는 “북미 배급 회사는 (중급 영화 배급으로 유명했던) 와인스틴컴퍼니였는데 흥행 비결이 뭐냐고 편지를 보내 왔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라라랜드’는 매년 재개봉할 정도로 국내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노예 12년’ 역시 기대 밖 흥행을 안겨준 영화다. “많아야 관객 10만 명 정도 예상”했는데 50만 관객이 찾았다. 판씨네마 수입 영화는 완성도가 높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백 대표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지닌 영화를 선별 기준으로 삼아왔다”고 했다.
‘미나리’는 영화가 완성된 후 수입했다. 백 대표는 “한국인들이 참여한 영화라 관심을 두고 있다가 지난해 1월쯤 봤다”고 했다. “영화는 좋았지만 크게 흥행할 작품은 아니어서 소극적 태도를 취하다 지난해 10월 구매를 결정했다”고도 밝혔다. ‘미나리’는 다음 달 25일 열리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백 대표는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작품상은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2년 연속 (한국어 영화에) 주긴 어려울 테고, 여자 감독을 푸대접한다는 말들이 많아 감독상 수상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남우주연상은 ‘마 레이니, 그녀는 블루스’의 채드윅 보즈먼이 받을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백 대표는 ‘미나리’의 음악상(에밀 모세리) 수상을 기대하기도 했다. “‘미나리’를 10번쯤 봤는데 3, 4번째 관람할 때 음악이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미나리’가 한국인 이민 가정 이야기를 넘어 인류 보편적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③"'미나리' 관객 이미 기대치 이상"
흥행 실패를 안긴 영화도 적지 않다. 백 대표는 “‘핵소고지’(2016)는 (할리우드 스타) 멜 깁슨이 연출하고 영화 완성도도 빼어나 기대가 컸는데 실망스러운 흥행 성적을 남긴 영화”라고 기억했다. 무엇보다 판씨네마가 제작했던 한국 영화 ‘호우시절’(2009)이 뼈아프다. “허진호 감독 연출에 정우성이 주연해 50만~70만 명은 볼 줄 알았는데 관객이 29만 명 정도”에 그쳐서다. “역시 영화가 예상 밖으로 터질 때 기분이 최고죠. ‘미나리’는 코로나19 확산에다 작은 독립영화라 50만 명만 봐도 좋겠다 했는데 70만 명(28일 기준 81만7,259명)을 이미 넘겼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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