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바람 잘 날이 없다. 선거가 안 풀릴 땐 뭘 해도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1일 이렇게 푸념했다. 지난달 2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 민주당엔 ‘해 볼 만하다’는 낙관론이 적지 않았다. 야권 후보 단일화 거품이 빠지고 진보 지지층이 결집하면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역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기대는 허물어지는 중이다. 외부가 아닌 내부의 악재 때문이다. 부동산 내로남불과 막말, 정책 뒤집기 논란이 문자 그대로 매일 벌어지면서 두 후보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에선 "지난해 4ㆍ15 총선 때 각종 막말과 공천 파동으로 민심을 잃은 국민의힘 전신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조마저 나온다.
①선거 X맨? 586 중진들의 ‘실언’ 릴레이
악재의 출발은 실언과 막말이었다. 박영선 후보는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 체험을 하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직원에게 청년 창업자금 무이자 대출 공약을 설명하고, 점주에겐 무인점포 운영을 건의해 ‘공감능력 부족’ 비판을 자초했다. 26일에는 20대 사이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20대는 역사에 대해 40~50대보다 경험치가 낮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민주당 의원들의 ‘막말’도 겹쳤다. 5선 안민석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에 대해 “자꾸 일제시대 이야기를 한다”고 했고, 4선 윤호중 의원은 오세훈 후보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당 지도부가 “막말로 선거분위기를 흩트리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②1일 1 내로남불? 김상조ㆍ박주민 '대형 사고'
막말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이내 ‘부동산 내로남불’ 시리즈가 등장했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해 전ㆍ월세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한 ‘임대차 3법’ 시행 이틀 전에 강남 아파트 전셋값을 14%(1억2,000만 원) 올린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김 실장을 경질했지만,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흘 만인 31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 또한 임대차 3법 국회 통과를 앞두고 아파트 임대료를 9% 인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전ㆍ월세 상한제 관련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혹스러운 민주당의 1일 1 내로남불”(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이라는 조소가 쏟아졌다.
③세금 폭탄 없다더니 ‘공시가 속도조절’… 정책 자기부정
부동산발 민심 이반이 커지자, 민주당은 ‘자기부정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공시가격(세금부과 기준ㆍ시세 60~70%) 인상 속도 조절이 대표적이다. 박영선 후보는 최근 민주당에 ‘9억 원 이하 아파트의 공시가격 인상률을 10% 미만으로 해달라’고 요청했고,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검토에 들어갔다”고 했다. 정부ㆍ여당은 당초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2030년까지 90%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는데, ‘세금폭탄’ 불만이 커지자 노선을 급히 바꾼 것이다.
민주당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완화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규제 지역에선 집값의 40~50%만 대출받을 수 있는데,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는 LTV 비율을 60~70%까지 높여주겠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세금 중과와 대출 규제→투기 수요 억제→집값 하락’의 정책 기조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1일 "주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제동을 거는 등 당청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있다.
총선 때는 ‘단일대오’ 이번엔 ‘좌충우돌’
민주당의 이 같은 ‘좌충우돌’ 행보는 지난해 총선 때와 180도 다른 모습이다. 민주당은 일사불란했다. 이해찬 당시 대표의 지략과 리더십 덕분이었다. 민주당은 ‘코로나19 위기극복’이라는 핵심 의제를 선점하며 야당의 ‘정권 심판론’을 압도했다. 막말 논란, 공천 잡음도 거의 없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 때는 이해찬 대표가 기강을 잡으며 ‘원팀ㆍ원메시지’ 기조가 철저히 유지됐다”며 “지금은 당 내 리더십 부재로 개별 의원들의 ‘자기 정치’를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소극적 민주당 지지자를 포함한 중도층이 왜 민주당에 돌아섰는지 민심을 읽어야 하는데, 지도부는 조직과 지지층만 결집하면 선거를 이길 수 있다는 전략에 집착하고 있다”며 “지지층만 바라보다가 진짜 민심에 둔감해진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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