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는 교과목으로 ‘가정’과 ‘가사’가 있었다. 안주인의 손이 가는 집 안 곳곳을 다룰 지식을 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음식과 관련된 부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양소를 지키는 조리법을 통째 외워 시험을 보던 때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때 교과서나 요리 잡지에 많이 쓰인 측량 단위가 있다. 한 큰 스푼, 한 티스푼처럼 적던 ‘스푼’이다. 티스푼은 아예 ‘TS’로 표기된 경우도 많았다. 책에 적힌 대로 양념을 계량하면서 요리를 했지만, 어머니가 뚝딱해 내는 그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늘 풀지 못한 숙제였다.
그런데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렇게 요리하지 않는다. 요리는 손맛이라 했다. 손으로 재료를 다듬고, 손으로 양념을 치고 손으로 버무린다. 손으로 하는 일이니만큼 우리말로 그 단위들이 다양하다. 우선 ‘한 줌’이 있다. 줌은 주먹의 준말이지만, 수량 뒤에 쓰여 주먹으로 쥘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이른다. 주먹으로 쥐지만, ‘미역 두 춤’과 같이 가늘고 기름한 물건을 한 손으로 쥘 만한 분량은 ‘한 춤’이라 한다. 손이 커서 덥석 잡는 사람에게는 ‘춤이 크다’고 할 만하다. 한 줌 안에 들어올 분량의 길고 가느다란 물건에는 ‘한 모숨’이란 말을 쓴다. 나물 종류는 열 모숨을 한 줄로 엮어 내다 파는데, ‘산나물 열 모숨’은 ‘한 갓’이다. 콩이나 사탕 같은 것을 손으로 한 줌 움켜쥘 만한 분량은 ‘한 움큼, 한 옴큼’이라 한다. 움키는 것은 물건을 놓치지 않도록 손가락을 오그려 힘 있게 잡는 것이다. 아이에게 사탕을 주며 맘껏 가져가라 하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 한 움큼 집어낸다.
소금처럼 자칫 양 조절에 실패하면 바로 음식을 망치게 되는 양념은 조금씩 넣는다. 그때 쓰는 말로 ‘한 자밤’이 있다. 자밤은 나물이나 양념을 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이다. 요즘 일반인들이 누리소통망으로 참여하여 새말을 소개할 수 있는 소위 ‘열린 사전’에는 ‘한 꼬집’이라는 참신한 표현도 보인다. 꼬집는 행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꼬집’은 소금이나 설탕 등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모아서 그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이다. 이제 그때의 여고생들은 그때의 우리 어머니들보다 나이가 더 들었다. 어느덧 우리 어머니들의 손맛도 닮아갔을 것이다. 이제는 소금 한 큰 스푼, 설탕 한 티스푼이 아니라, 나물 한 자밤에다가 소금 한 꼬집을 손맛의 감으로 잡아 간을 맞춰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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