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약 20년 만에 정전(停戰)에 합의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중재로 외교장관들이 여러 차례 만남을 가진 끝에 2월 25일 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국경 관련 평화를 성취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이 클 것', '평화를 방해하고 폭력으로 이끌고 갈 경향이 있는 중심 이슈와 관심사를 의제로 제시' 등이 협정의 주요 내용이다. 평화 협정으로 가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으로 이해된다. 양측 정전 협정 체결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인도-파키스탄 분쟁 역사와 카슈미르 지역의 지정학적 지위 및 주권(정체성 충돌) 문제, 각국 지도자들의 정책, UAE의 중재자 역할 이유 등 다각적 관점의 분석이 필요하다.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 시작된 갈등
첫째,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1947년 8월 영국으로부터 두 개 국가로 분리 독립된 뒤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독립 전 인도·파키스탄 지역은 인종, 부족, 종교, 민족 등 많은 분쟁 요인을 내포하고 있었다. 분리 독립은 식민 제국의 전통적인 '분할 통치' 정책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체성 위기'의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종교 정체성'이 큰 요인이 됐다.
물론 통일된 국가로 독립하자는 주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김구 선생처럼 통일 국가 건설을 희망하던 마하트마 간디도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의 사주로 암살됐다. 대화가 끊어지지는 않았다. 카슈미르, 대(對)테러, 무역 등 9개 쟁점 해결을 위해 다방면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뭄바이 테러(2008년 11월)는 대화 단절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주로 분쟁 국면이었다. 최근 3년간 국경 지역에서 1만752회의 정전 위반 사태가 있었고 보안군 72명, 민간인 70명이 숨졌다는 게 인도 내무부 주장한다. 특히 지난해 한 해에만 정전 위반 사태 절반 이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파키스탄 측 설명은 다르다. 3,097회의 정전 위반이 있었으며 민간인 28명이 사망했고 257명 부상했다고 말한다.
둘째, 분쟁 핵심인 카슈미르 지역의 경우 종교가 가장 중요한 갈등 요인이다. 이 지역 주민 다수는 무슬림이지만 소수 정치 엘리트는 힌두교도다. 종교 정체성 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채 인도, 파키스탄, 중국의 통제 지역으로 삼분된 게 분쟁이 끊이지 않는 핵심 이유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는 카슈미르 영유권을 둘러싼 1947년 제1차 분쟁과 1965년 제2차 분쟁, 방글라데시 분리 독립 문제를 둘러싼 1971년 제3차 분쟁 등 세 차례의 비교적 큰 분쟁(전쟁)이 있었다. 휴전 상태로 70여년 동안 분쟁을 벌인 남북한과 유사하게 3차 분쟁 이래 양국은 휴전 상태로 남아 카슈미르 갈등, 핵 보유 경쟁 등 분쟁을 지속적으로 겪었다.
카슈미르에는 중국과의 갈등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지역은 잠무 카슈미르와 중국 국경 지역 '라다크'로 양분된다. 잠무 카슈미르는 무슬림(800만명)이 다수인 카슈미르 계곡과 힌두교도(600만명)가 다수인 잠무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고도 사막 지역인 라다크에는 30만명이 거주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중국 통제 지역인 라다크를 제외한 전체 카슈미르를 자국 영토라 주장하고 있는데, 그 경계가 애매한 게 사실이다.
때문에 인도와 중국 간 국경선은 '실질통제선(LAC)'으로 불리고,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다. 2019년 8월 5일 인도가 70여년 동안 자치 지역이던 잠무 카슈미르 지역을 '직할령' 지역으로 결정하자 중국이 반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당시 중국은 자국 통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불법적 행위'라고 인도의 결정을 비판했고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1963년 소위 중국·파키스탄 영토 합의에 의해 인도 영토를 중국이 불법적으로 획득, 점거하고 있다'는 게 인도 정부 주장이다. 이처럼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인도, 파키스탄, 중국 간 분쟁은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셋째, 올 2월 인도-파키스탄 정전 협정은 양국은 물론 UAE 국가 정상과 외교장관들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다. 지난해 11월 인도 외교장관 수브라마냠 자이샹카르가 아부다비를 방문해 UAE의 실질적 지도자인 왕세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나흐얀을 만났고, 이어 파키스탄 외교장관 샤 마흐무드 쿠레시와도 회담을 가졌다. 정전 협정 발표 2주 전에는 UAE 외교장관이 파키스탄 수상 임란 칸과 전화로 '지역적·국제적 관심 사항'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직전 칸이 스리랑카를 국빈방문 했을 때 인도가 자국 영공을 통과하도록 허용하면서 이미 양국 간에 해빙 분위기가 형성된 터였다.
이 과정에서 양국이 UAE의 중재 역할을 공개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양국의 정전 협정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UAE가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까지 구상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유사한 목표다.
중재자 UAE의 등장, 이유는
그렇다면 왜 UAE가 중재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먼저, UAE의 대외 정책 기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최근 UAE의 외교 정책을 보면,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국제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중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UAE는 ‘안정, 절제, 발전의 증진’이 국가 목표인 포스트 오일 시대 대비 자국 미래 발전 방향을 공개하고 '아부다비 경제비전 2030'을 그 목표로 발표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지역적, 글로벌 차원의 안정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UAE는 대한민국, 중국, 인도, 일본, 싱가포르와 특별 전략적 파트너십 협정을 맺고 있다. 또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가 중국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대외 정책도 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파키스탄과의 선린관계가 인도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외교를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UAE는 자국 인구학적 측면을 고려해 주변국인 인도 및 파키스탄과 연대감을 강조하고 있다. UAE 인구 약 1,000만명 중 88%가 이주자이고, 그 중 남아시아인이 60%다. 남아시아인 중 인도인이 340만명, 파키스탄인이 120만명이다. 인도인과 파키스탄인 모두 UAE 국가 비전 실현을 위한 기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양국의 분쟁은 UAE의 사회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양국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지렛대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정전 협정은 첫 단추일 뿐이다. 2013년 12월, 양국의 군 최고 당국이 '정전 양해각서'에 합의한 적이 있지만, 바로 그 다음해부터 긴장이 시작돼 2018년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다시 '2013년 정전 양해각서의 완전한 이행'에 합의도 했지만 몇 달 가지 못했다. 이런 '분쟁과 평화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이번 정전 협정도 '지속가능한 평화'로 이어질지 아직 확신할 수 없어 보인다. 한반도 '분쟁과 평화의 역사'처럼 상호 신뢰가 약하다. 평화 협정까지 간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많은 시간과 관련국들의 노력, 상호 신뢰가 필요해 보인다. 중재자 UAE도 관련국들의 신뢰를 가장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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