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전모 드러나면서 '엽기 행각' 혐의 약해져
사이코패스 검사 없이 프로파일러 면담 끝내
전문가들도 "사이코패스 범죄 양상과 다른 점 많아"
'노원 세 모녀 살인' 피의자 김태현(25·구속)에 대한 조사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경찰이 그를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범죄자로 보기 어렵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파악됐다. 9일 사건 송치를 앞두고 있는 경찰이 김태현의 범행 동기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이날까지 총 6차례 김태현을 조사한 결과 그가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사이코패스는 공감능력 및 죄책감 결여, 무책임성, 행동 통제 곤란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인격장애로, 흉악범의 사이코패스 성향 보유 여부는 범행 동기 파악에 중요한 요소다. 당초 경찰은 범행이 치밀하게 계획됐고 수법 또한 잔혹한 점에 주목, 2일 첫 조사부터 프로파일러 4명을 투입해 김태현의 심리 상태를 면밀히 분석해왔다.
경찰이 사이코패스 범죄 가능성을 잠정 배제하면서 김태현에 대한 사이코패스 검사(PCL-R, 체크리스트를 통한 정신감정)도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사건 송치 전 마지막 프로파일러 면담에서도 김태현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사이코패스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의자 성향에 대한 판단을 마쳤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그간의 면담 내용 등을 종합해 김태현의 심리 등을 분석할 예정이며, 검찰 송치 이후에라도 상황에 따라 검사가 시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범행 전모가 보다 분명해진 점도 경찰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그간 경찰 안팎에선 김태현이 지난달 23일 세 모녀 집에 침입해 이들을 살해하고 이틀 뒤 검거될 때까지 범행 현장에 머문 점, 냉장고에 있던 술과 음료를 꺼내 마신 점 등에 주목해 김태현이 이상심리로 엽기적 행각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의심이 일었다.
하지만 수사 결과 김태현이 세 모녀 집을 떠나지 않은 건 범행 후 자해를 했다가 장시간 의식을 잃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그는 목 등을 여러 차례 자해해 경찰 출동 당시 흉기에 찔린 채 바닥에 누운 상태로 발견됐지만 자해 부위가 급소를 빗나가 치명상을 입진 않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전부터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뒀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실제 살인용 흉기 외에 여분의 흉기를 소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술을 마신 이유는 자해 이후 심한 갈증을 느꼈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김태현이 밥까지 먹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경찰은 현장조사나 피의자 진술에 비춰볼 때 그렇게 볼 만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김태현의 범행 후 행적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범죄와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발각 위험에도 불구하고 범행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점이 전형적 사이코패스 범죄와 차이가 있는 데다, 사이코패스는 자기중심적이라 스스로를 해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보통 사이코패스는 검거를 피하려 범행 후 즉시 도망간다"며 "(김태현처럼) 현장에서 자해를 한 건 사이코패스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범행 동기에 대해 "한 사람에 대한 집착이 범행으로 이어졌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심리적으로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이날 김태현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9일 오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 김태현은 현재 수감지인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서울북부지검으로 이송되면서 포토라인에 설 예정이다. 경찰은 김태현이 큰 딸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한 것으로 보고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망침해 등의 혐의를 적용해 추가 입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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