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잉글리시 게임'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축구엔 복잡한 규칙이 없다. 장비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 공 하나에 공터만 있어도 가능한 운동이다. 태생적으로 빠르게 보급될 만했다. 하지만 초창기 축구는 소수의 게임이었다. 주로 영국 상류층이 즐겼다. 19세기 후반 격변이 일었다. 하위계층도 축구의 재미에 빠졌다.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축구는 사업이 됐다. 구단주는 축구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직업 선수가 등장하게 됐다. ‘잉글리시 게임’은 축구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비즈니스가 되던 시기를 다룬다.
①계급을 구분 짓는 운동
19세기 후반 영국 축구의 지배자는 올드 이트니언이었다. 명문 이튼스쿨 졸업생들이 만든 축구 클럽이었다. 클럽은 최강팀이었고, 선수들은 축구협회 이사이기도 했다. 게임의 규칙을 만들었고, 그라운드를 호령했다.
도전자가 나타났다. 랭카셔주에서 온 다웬FC였다. 노동자들로 구성된 이 팀은 퍼거스 수터(케빈 구스리에)라는 출중한 선수가 있었다. 기량뿐 아니라 전략까지 뛰어났다. 선수들이 대열을 지어 상대방 수비를 돌파하는 전통적 방식과 달리, 수터는 선수들을 넓게 펼쳐서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새 전략을 썼다. 올드 이트니언의 주장인 아서 킨너드(에드워드 홀크로프트)는 떠오르는 라이벌 수터를 주목했다.
올드 이트니언과 다웬FC는 첫 대결에서 승부를 보지 못했다. 올드 이트니언 선수들은 연장전은 사전 합의되지 않았다는 꼼수를 써서 재경기 날짜를 잡았다. 다웬FC 선수들이 랭카셔로 돌아갔다가 경기를 위해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약점을 활용했다.
②노동자팀의 등장, 축구를 바꾸다
다웬FC 선수들은 지역 면직공장 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면직공장 소유주 월쉬는 축구팀을 공장 구심체로 활용하려 했다. 축구는 노동자들이 팍팍한 삶을 다독여주는 유일한 오락이었다.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축구를 통해 계급 갈등을 분출했다. 축구팀이 런던 부자팀을 이길 때마다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은 통쾌함을 느꼈다. 월쉬가 팀 전력 강화를 위해 몰래 돈을 주고 수터와 그의 친구 지미를 스코틀랜드에서 데려온 이유다.
당시 선수에게 돈을 주는 건 협회 규칙 위반이었다. 상류층이 지배하던 축구협회는 축구를 심신단련을 위한 운동으로 봤다. 스포츠의 순수성을 돈으로 깨트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아마추어리즘을 엄격하게 견지했다. 노동자들은 달랐다. 일할 시간에 축구에 매달릴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딱히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류층에게 축구는 취미에 불과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에겐 생계가 달린 일이었다.
작은 거래는 큰 거래로 이어진다. 또다른 축구팀 블랙번FC 감독은 수터에게 거액을 주겠다며 스카우트 제안을 한다. 가족을 위해 돈이 필요한 수터는 고민 끝에 팀을 옮긴다. 이전 팀 구성원들에게는 배신자 소리를 듣는다. 블랙번FC 감독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경기를 여는 것까지 구상한다. 축구 비즈니스의 서막인 셈이다.
③축구선수, 직업이 되다
축구협회는 들썩인다. 유료로 관중을 들인 다웬FC와 블랙번FC를 퇴출시키려 한다. 노동자 팀에 대한 올드 이트니언 선수들의 거부감이 한몫 했다. 수터는 소명을 위해 협회 회의에 출석한다. 수터 등과 교류하며 노동자의 삶을 깨달은 킨너드는 수터 편에 선다. 그는 직업 선수의 등장이 축구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킨너드의 동료들은 결국 돈 많은 팀이 매번 승리할 것이고,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반대한다. 그라운드를 함께 누비던 동료들은 킨너드와 대립각을 형성한다. 노동자의 편에서 축구의 가능성을 본 킨너드의 선택은 새 시대를 열게 된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는 반개)
축구팬을 자처한다면 반드시 봐야 할 드라마다. 현대 축구의 발아기를 그렸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존했다. 킨너드는 현대 축구의 토대를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논란이 있지만 수터는 첫 직업 축구선수로 꼽힌다. 실존인물들의 사연에 허구를 보태 극적 재미를 더했다. 축구를 통해 19세기 영국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자본가의 노동착취, 파업, 첨예한 계급 갈등 등이 화면 곳곳에 담겨있다. 축구 드라마지만 경기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현대와 크게 다른 초창기 축구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53%, 시청자 85%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