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팅종이, 해리 과정 거치면 화장지·골판지 등으로 재생
그러나 분리배출 통로 없어서 제대로 수거 안 돼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8>코팅종이
종이를 분리배출 하다 보면 매번 고민에 빠진다. 지금 버리는 것 중 혹여 비닐 코팅이 된 제품이 있는 건 아닐까. 눈으로만 보면 구분하기 어려워 만져보고 찢어본다. 코팅된 종이가 ‘재활용되는 척 깜빡 속인 쓰레기’라는 환경부의 친절한 카드뉴스를 접하니 더욱 철저해진다. 일부 소비자들은 코팅종이의 ‘환생’을 위해 손으로 일일이 비닐을 떼어내는 수고도 감내한다.
하지만 코팅종이는 모두 재활용이 가능하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생김새와 색깔이 다른 코팅종이 용기 10개를 들고 직접 제지업체 및 재활용업체에 확인한 결과다. 오히려 ‘일반쓰레기에 버리라’는 정부의 무책임한 홍보가 코팅종이 재활용을 막고 있었다. 종이폐기물 각각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분리배출 체계도 문제였다.
“여기 있는 품목(코팅종이)은 100% 다 재활용할 수 있는 겁니다.”
정인태 동방제지 대표
지난 1일 경기 하남시 동방제지 공장에서 만난 정 대표에게 코팅종이는 중요한 원료였다. 코팅종이는 용기의 안쪽 또는 바깥쪽이 폴리에틸렌(PE)으로 뒤덮인 종이다. 종이컵처럼 액체를 담거나 색을 인쇄하기 위해 플라스틱을 붙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종이와 섞일 경우 재활용을 위한 펄프화 과정에서 방해가 된다. 정부가 ‘일반쓰레기로 배출하라’는 이유다.
그러나 코팅종이만 따로 모은다면 재활용 공정에 큰 문제가 없다. PE는 약품을 이용해 해리과정을 거치면 종이와 분리되기 때문이다. 이후 남은 펄프만 모아 화장지, 키친타월 등 새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해리 후 비닐 잔재물이 골칫덩이이긴 하지만 이 역시 소각을 통해 에너지 재활용을 하는 등 활용법은 여럿이다.
이런데도 현행 배출체계에선 코팅종이가 재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통로가 없다. 정 대표는 "코팅종이를 종이와 한꺼번에 버려도 안 되고, 그렇다고 일반쓰레기로 분류하면 말 그대로 그냥 버려지는 것"이라며 "현재로선 소비자들이 곤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종이컵·종이팩은 재활용 용이, 반드시 씻어 버려야
물론 코팅종이 중에서도 재활용이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있다. 종이컵은 가장 재활용하기 좋다. 내부 코팅이 얇기 때문이다. 겉면에도 인쇄가 없거나 적은 편이라 화장지로 재생해도 상품성이 좋다. 다만 종이컵 전체에 화려한 인쇄가 된 건 색이 강해서 골판지 제작 등에만 사용한다.
우유팩 등 종이팩 역시 재활용이 잘되는 종류다. 종이팩은 안과 밖에 모두 코팅이 돼 있다. 겉면에 여러 디자인이 인쇄되지만, 종이에 직접 한 게 아니고 비닐 위에 덧씌워진 거라 코팅만 떼어내면 깔끔하게 재생할 수 있다. 화려한 분홍색 딸기우유팩도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종이컵이든 종이팩이든 닦아서 배출해야 한다. S제지 관계자는 “세척을 안 하고 버릴 경우 찌꺼기가 남을 수 있고 오래 두면 곰팡이가 생기기 때문에 재활용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유팩은 특히 수거 후 재활용하기까지의 적체기간이 긴 편이라 중간에 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멸균팩 재활용, 쉽진 않지만 가능하다
멸균팩은 종이팩과 용도가 비슷하지만 재활용은 쉽지 않다. 상온 보관이 가능하도록 알루미늄 코팅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종이팩의 코팅은 4겹 정도인데 멸균팩은 7겹이라 코팅을 모두 벗겨내더라도 종이로 쓸 수 있는 부분은 절반을 넘지 않는다. 혹여 알루미늄 잔여물이 남아 휴지에 섞일 수도 있어 관련 업체에선 선호하지 않는다.
멸균팩을 재활용하려면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재활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환경부가 행정예고한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지침’ 개정안은 환경단체와 소비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내년부터 멸균팩과 같이 여러 재질이 붙어 있는 폐기물에 ‘도포ㆍ첩합’ 표시를 하고 일반쓰레기로 버리도록 한다는 내용인데, "자원 재활용 가능성을 되레 낮추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종이 가공업체인 동방제지 정인태 대표는 “예전에 멸균팩 재활용을 전문으로 하기 위해 수십억을 투자해 설비를 마련한 회사가 있었는데 원료 수집이 되지 않아서 사업을 접은 경우가 있다”며 “분리배출만 됐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문양·글자·접착제 있어도 괜찮아
기타 코팅종이로 만든 용기도 재활용이 된다. 어떤 제품을 만들 수 있는가는 인쇄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비닐 코팅 위에 인쇄가 돼 있다면 비닐을 벗겨낸 뒤 화장지 등을 만들 수 있다. 반면 이미 색이 입혀진 종이를 비닐로 감싼 형태의 코팅종이 용기들은 표백 과정을 거쳐도 미세하게 색이 남는다. 골판지나 물류상자를 만드는 데 주로 쓴다.
종이컵 형태의 아이스크림 통이나 컵라면도 재질 자체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다만 화장지 제품을 생산하는 S제지 측은 “컵라면 용기는 재활용 원료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름진 음식물로 오염이 된 데다, 세척해 버리더라도 국물 자국이 남아 제품 색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신 컵라면 용기도 골판지 등으로 만들 수 있다.
코팅종이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거나 접착제가 남아 있더라도 재활용에 문제가 없다. 비닐 코팅을 해리하는 과정에서 접착 부분도 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컵에 접착제로 라벨이 붙으면 재활용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과 다르다.
페트병처럼 분리배출 하면 되는데... 환경부는 미온적 태도
이처럼 코팅종이도 분리배출만 잘되면 일반 종이와 마찬가지로 재활용할 수 있다. 종이컵 250개를 만들려면 15년생 소나무 한 그루가 쓰인다. 안 쓰는 게 최선이지만, 쓰더라도 재활용ㆍ재사용해야 하는 건 종이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팅종이 중에서도 종이팩과 종이컵만큼은 구분해 배출돼야 한다고 말한다. 천연 펄프로 만들어 자원으로서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마치 플라스틱 중 가장 재활용 효용이 높은 투명 페트병과 같은 존재다. S제지 관계자는 “최근에 페트병의 라벨을 떼고 따로 분리배출 하는 것처럼, 종이컵이나 팩도 색깔이나 로고 없이 생산되고 분리배출 된다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은 정반대다. 2019년 우리나라 종이팩 출고량 7만1,728톤 중 재활용된 건 1만4,487톤으로 20.2%에 그쳤다. 자원재활용법상 재활용 의무율이 30.5%인데 2013년부터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카페나 식당의 종이컵ㆍ팩 수거사업을 하면서 그나마 수거율이 높아졌다.
환경부는 내년에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부활하면 종이컵 수거가 다소 원활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카페나 음식점 등에서 판매하는 일회용컵에 일정액의 보증금을 부과하고 소비자가 컵을 반납하면 돌려주는 제도다. 플라스틱 컵은 물론 종이컵도 대상이다. 그러나 회사나 식당에서 쓰는 작은 종이컵은 예외인 데다, 가정 폐기물은 포함하지 않아 근본적인 대책이라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페트병처럼 수거 단계에서부터 분리하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종이팩과 종이컵은 페트병과 마찬가지로 환경부 지침상 '분리 수거 대상 재활용 가능 자원'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 같은 대책에 미온적이다. “종이팩류는 따로 수거하기엔 양이 많지가 않고 자원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에서다. "수거 업체에서도 종이에 코팅종이가 섞일 경우 선별을 하지만 양이 적어 선호하지 않고 대부분 버리는 걸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 같은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거량이 적어 재활용이 안 되는게 아니라, 애초에 분리배출이 안 돼서 수거량이 적다는 것이다. 폐자원수거 사회적 협동조합인 '자원과순환'의 이만재 회장은 “지금은 코팅종이 용기를 수거해와도 그 안에 비닐ㆍ플라스틱까지 섞여 있을 정도로 분리배출이 잘 안 돼서 제지업체들은 분류를 포기하고 폐자재를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수거 단계에서 분리가 되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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