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개봉 프랑스 영화 '레 미제라블'
환희가 넘친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국기를 흔들며 열광한다. 피부 색깔과는 무관하게 하나가 된 듯하다. 자국 축구대표팀이 2018년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니 ‘국뽕’에 취할 만하다. 축구가 프랑스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을 재확인시켜준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똑 같은 프랑스인일까.
영화 ‘레 미제라블’의 도입부는 역설적인 장면을 통해 큰 물음표를 던진다. 축구로 하나가 됐다고 하나 프랑스인이라고 다 같은 프랑스인이 아니다. 피부로 차별 받고, 종교로 구분되며, 빈부로 계층이 갈린다. 파리 빈민 지역 몽페르메유에 사는 이민자들은 프랑스인임에도 프랑스인으로 대우 받기 더욱 어렵다. 대부분이 무슬림 인데다 흑인이고 가난하다.
경찰 스테판(다미엔 보나드)이 몽페르메유에 전근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크리스(제브릴 종가)와 그와디(알렉시스 마넨티)가 활동하는 순찰팀에 배정돼 몽페르메유 일대를 돈다. 몽페르메유는 이전 근무지와는 다르다. 새 동료들에 따르면 누구나 우범자다. 아내를 창 밖으로 던졌거나 총을 소지한 채 테러 기회를 엿보는 이들이 거리를 떠돈다. 순찰 활동도 위압적이다. 그와디는 골치 아픈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폭력적인 언행이 필요악이라고 주장한다. 그와디는 지역 폭력 조직과도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어서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일상을 뒤흔든 사건은 특이한 절도에서 비롯된다. 집시들로 구성된 서커스단에서 아기사자가 도난 당하면서 갈등이 잉태된다. 집시들은 흑인 소년이 아기사자를 훔쳐가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흑인 지역공동체가 책임을 지라고 윽박지른다. 지역 지도자는 말도 안 된다고 맞받아친다. 그와디 일행은 양측의 감정싸움이 무력충돌로 번질까 봐 아기사자 절도범 찾기에 나선다. 하지만 절도범을 잡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다툼이 발생하고, 사건은 지역을 흔드는 폭력사태로 번진다.
영화는 소동에 불과했던 일이 지역사회의 이슈로 변질되는 과정을 정밀하게 들여다 보며 프랑스사회의 현실을 직시한다. 이민자에 대한 편견, 문화 충돌(집시들은 아기사자를 우리에 가두지만, 무슬림은 사자는 위엄 있는 동물이라 가둬두면 안된다고 말한다), 빈곤의 악순환, 청소년 폭력, 조직폭력배와 공권력의 결탁 등 여러 부조리가 맞물린 곳이 바로 프랑스라는 주장이다. 영화는 온당치 않은 사회환경 속에서는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의 배경 만으로도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몽페르메유는 빅토르 위고(1806~1885)가 소설 ‘레 미제라블’을 썼던 곳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장발장이 양녀 코제트를 처음 마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소설이 발간된 1862년에서 16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몽페르메유는 거주민의 얼굴 색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빈민 지역이다. ‘레 미제라블’의 레쥬 리 감독은 말리계로 몽페르메유에서 자랐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빈민 지역의 불우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성장했다. ‘레 미제라블’은 그의 첫 장편극영화다. 리 감독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화면마다 감정의 폭약을 장착한다. 관객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102분을 보내게 된다.
영화는 동명 소설에 나온 문구로 끝난다. “여러분 이걸 잘 기억해주세요.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사람들은 흔히 눈앞의 범죄자나 폭력적인 경찰에게서 어떤 사회적 사건에 대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처벌과 응징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언제나 정부나 시스템, 구조가 문제다. ‘나쁜 농부’가 있는 한 들에선 ‘나쁜 풀’이 자란다. 영화는 ‘나쁜 농부’를 없애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2019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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