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러시아 대사' 해외로 입소문?
러시아어 전공·영업 이력 살려
?"10년 직장 생활이 연기 텃밭"?
?'인생 2막' 활짝 펼친 '늦깍이 배우'
"쑤마 싸쉴라(미쳤나)". 조폭 출신 사업가(이창진)는 일이 꼬일 때면 알아듣기 어려운 거친 러시아어를 툭 내뱉는다. 고위공무원과 정치인을 만나 앞에서는 따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러시아어로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게 이 사내가 '진흙탕'에서 사는 방식이다.
여진구가 "소제 형님" 부른 이유
JTBC 드라마 '괴물'에서 이창진을 연기한 배우 허성태(44)는 요즘 러시아인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메시지를 종종 받는다. 드라마 종방 직후인 1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허성태는 "'어떻게 저 단어를 아냐' '정말 우리가 쓰는 말이라 깜짝 놀랐다'며 러시아분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며 웃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등을 통해 드라마를 보고 찾아온 러시아인들의 반응이었다.
허성태는 "'괴물' 촬영 전, 작가와 PD와의 첫 미팅 때 두 분이 내 전공을 알고 먼저 러시아어 연기를 제안했다"고 제작 뒷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대학에서 노어노문을 배웠고, 전공을 살려 유명 전자회사 해외 마케팅팀에서 한때 일하며 러시아를 드나들었다. 드라마 러시아어 대사 검수는 통역 일을 하는 과 후배의 러시아인 아내 도움을 받았다.
허성태는 러시아어와 함께 스카프, 지팡이 등의 소품을 활용해 캐릭터의 이중성을 부각했다. 극에서 평소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이창진은 살인 현장에서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으며 돌변한다. 이창진은 '괴물'의 '신스틸러'였고, 그런 그를 여진구는 촬영장에서 "소제 형님"이라고 불렀다. 반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1996) 속 연쇄살인범 카이저 소제를 빗댄 애칭이었다.
대기업 회사원의 '가시밭길'
허성태는 지난 1년 쉴 틈 없이 살았다. '괴물'을 비롯해 올해 공개될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대작인 '오징어게임'과 '고요의 바다'를 줄줄이 촬영했다.
세 작품 배역을 위해 몸무게를 90kg까지 불렸다. 최근 세 작품 촬영이 모두 끝나 평소 체중(75kg)으로 돌아가려면 15kg을 빼야한다. 허성태는 "영화 '소년들'(2020)에서 연을 맺은 설경구 선배가 '왜 나처럼 살려고 하냐'고 하더라"며 농담했다. 설경구는 영화 '역도산'에서 체중을 100kg까지 늘린 뒤 감량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서른다섯에 연기를 시작한 그는 '인생 이모작'의 성공 사례로 유명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10년 동안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다. 경남 거제도의 대형 조선소에서 사업기획을 세우던 회사원은 2011년 SBS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에 지원, 돌연 사표를 냈다.
이후 4~5년은 가시밭길이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단역 중의 단역인 '국문장 나장 1'로 1초 나왔다. 3박4일 동안 대기해 받은 출연료는 15만원. 70여편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며 생계를 걱정했다. 허성태는 "가장이다 보니 한때 퇴직을 후회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배우로서 그늘진 삶에 볕이 든 건 2016년 영화 '밀정'에 출연하면서다. 오디션을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본 뒤 주인공인 이정출(송강호)에 뺨 맞는 조선인 형사 하일수 역을 어렵게 따냈다. 단역이지만 워낙 기대작이라 당시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 허성태는 "나중에 들었는데, '출연료 받지 않을 테니 (하일수 역으로) 좀 써달라'는 요청이 제작사 쪽으로 좀 들어왔다더라"며 "그런데 김지운 감독이 저를 택했다"고 고마워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요" 허성태 찾는 사람들
'밀정' 후 허성태는 드라마와 영화 제작진들이 먼저 찾는 인상파 배우로 성장했다. '남한산성' '범죄도시' 등 영화와 '마녀의 법정' '왓쳐' 등 드라마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허성태는 "1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때 겪은 여러 경험이 내 연기의 밑천"이라고 했다.
역경을 딛고 배우로서 인생 2막을 당차게 이어나가는 허성태의 SNS엔 수험생과 직장인들의 인생 상담 메시지가 끊이지 않는다. 허성태는 "처음엔 '힘내시라'며 답을 해 드렸다"며 "그러다 어떤 서울대 생이 '열심히 공부에서 입학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고 묻는데,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삶에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란 겁이 덜컥 나 그 뒤론 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허성태가 요즘 홀어머니와 가장 많이 나누는 얘기는 "천만다행"이다. 그런 배우의 꿈은 소박하다.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좀 더 다양한 작품 맡아 여러 작품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머니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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