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유명한 밀양아리랑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좀’은 ‘조금’의 준말이지만 ‘조금’과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상적 언어생활에서도 ‘좀’을 자주 쓴다. “밥 좀 사 줘”나 “이거 좀 고쳐 줘”처럼 부탁이나 동의를 구하는 상황에서 특히 그러하다. 이때의 ‘좀’은 ‘정도나 분량이 적거나 시간적으로 짧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밥 조금 사 줘”, “이거 조금 고쳐 줘”처럼 ‘좀’을 ‘조금’으로 대체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좀’과 ‘조금’은 품사가 부사이다. 부사는 뒤에 나오는 서술어를 수식한다. 그런데 위에서 본 일부 ‘좀’은 뒤따르는 서술어를 수식하기보다 선행하는 명사를 한정한다. ‘조금’에서 ‘좀’으로 형태가 축약되면서 의미와 범주가 변하고 있다.
이처럼 일상적 말투에서 흔히 쓰이는 ‘좀’은 보조사로 볼 수 있겠다. 보조사는 주로 명사 뒤에 붙어서 특별한 의미를 더해 준다. “밥 좀 사 줘”의 ‘좀’은 낮은 빈도나 적은 양을 나타내는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선행 명사를 한정하고 다른 요소를 배제하는 보조사로서의 기능을 보여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탁이나 명령을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한국어 보조사 중에는 부사나 명사, 동사에서 온 것들이 꽤 있다. “하던 일을 마저 끝냈다”의 부사 ‘마저’는 보조사로 용법을 확장하여 “한 가닥 기대마저 사라졌다”처럼 쓰인다. “처음부터 너를 믿었다”의 ‘부터’는 동사 ‘붙다’의 활용형 ‘붙어’가 보조사화한 것이다. ‘마저’나 ‘부터’처럼 ‘좀’의 일부도 보조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와 현재가, 혹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언어 형식 안에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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