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을 모르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그런데 노랫말을 해석해 보던 한 일본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선생님, 십 리를 가는데 왜 발이 안 아파요?” 좀 엉뚱한 질문 같았는데, 알고 보니 일본의 ‘리’는 한국과 다른 단위였다. 아리랑에서 십 리는 약 4㎞다. 우리말에 오 리나 십 리가 못 되는 거리를 이르는 ‘마장’도 있으니, 아리랑의 ‘십 리’는 그저 얼마 안 되는 거리를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나를 버리고 가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일본에서 십 리는 약 40㎞니 그 정도면 탈이 날 만한 거리가 아닌가? 그런 연유에서인지 같은 책이지만 일본에서는 ‘엄마 찾아 삼천 리’로, 한국에서는 ‘엄마 찾아 삼만 리’로 번역되었다.
지역별로 고유한 길이나 무게의 단위가 있다. 간혹 같은 말로 쓰일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일 값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 번은 중국 학생이, "우리 동네 채소 가게 아저씨는 나쁘지만, 고기 가게 아주머니는 친절해요"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똑같이 한 근을 달라 했는데 채소 가게에서는 400그램도 안 되게 달아 주고, 고깃집에서는 600그램까지 주신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한 근은 품종에 상관없이 500그램씩이니, 채소 가게 주인이 억울할 만하다. 우리말에서 고기나 한약재의 ‘한 근’은 과일이나 채소의 ‘한 근’과 다르다는 것을 중국 학생은 몰랐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꼭 외국 사람에게만 드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고등어 한 손을 사서 안쪽에 든 생선을 꺼내 보면 늘 작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고등어 ‘한 손’이란 원래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하나를 합한 것’이란 뜻이었다. 알고 보면 재미있는 말 중에 ‘입이 한 발’도 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입이 툭 튀어 나온 채 돌아서는 귀여운 아이가 떠오르는데, 사실 여기서 ‘한 발’이란 두 팔을 양옆으로 펴서 벌렸을 때 한쪽 손끝에서 다른 쪽 손끝까지의 길이를 뜻한다. ‘입이 대엿 발 나왔다’라고 하면 얼마나 강조하려는 표현일까? 간혹 기력이 없다고 여길 때 하는 ‘보약 한 첩 해 먹어야겠다’란 말에도 ‘약 한 첩’에 대한 오해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한 첩’은 약봉지에 싼 약의 뭉치를 이르는 단위다. 사실 한약 스무 첩을 묶은 단위인 ‘한 제’를 그리면서 한 말이 아닐까? 매일 쓰는 말을 돌아보는 것은 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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