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직접 쓰는 윤중천·김학의 백서]
<2> 진상조사단의 실체
윤중천 공개소환 요구에 "檢개혁 폭탄발언 할라"
곽상도 수사권고 때 "민주당 반발 우려 조응천 빼"
2년 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사건 조사를 담당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8팀 소속 일부 구성원들이 여권을 의식해 수사권고 대상을 선별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가 하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린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진상조사단 8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는 이 같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익명 투서 공개하며 "한국당 셈법 복잡해지겠다"
진상조사단 일부 구성원들은 자신들 목적에 따라 무차별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언론에 공개될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익명 투서'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이 투서는 진상조사단이 검찰에 김학의 사건 재수사를 권고한 다음 날인 2019년 3월 26일 조사단에서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윤중천과 친한 P 변호사가 김갑배 (당시) 과거사위원장과의 친분 때문에 조사에서 누락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투서 공개 전후로 조사단 8팀 단체대화방에서 오간 대화를 보면 투서를 공개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조사단원 C가 "전체 그림에 도움이 될까요? 출처가 정확치 않은 내용을 내놨다가 혹시 역풍이 있을까 싶어서"라고 우려를 표하자, 조사단원 B는 곧바로 반박한다. B는 "익명 제보이고 써먹으라는 취지로 이해돼서요"라고 말하며, P 변호사가 누군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까지 공개했다. 이후 P 변호사 실명까지 특정한 언론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여러 조사단원들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조사단원 B씨는 개의치 않았다. B는 "내일부터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셈법이 복잡해지겠다. 정치공세라 주장해 왔는데, 여당 쪽 인사로 분류되는 자(P 변호사)가 나왔으니"라며 "오늘 편지 공보의 가장 큰 수확이며 내일부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란 말까지 꺼냈다. 야당이 정치적 공세라며 검찰 재수사에 반대했지만, 이번 보도로 반대할 명분이 없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시 익명 투서 공개를 둘러싸고 'P 변호사 출석 압박용'이라거나, 조사단 활동 기간 연장 문제로 긴장관계에 있던 김갑배 과거사위원장 공격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단체대화방 내용을 종합하면 이 같은 의도뿐 아니라, 전날 수사권고를 통해 본격화된 검찰 재수사를 정당화하거나, 진상조사단 차원의 추가 조사 동력을 얻으려는 '정치적 셈법'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진상조사단의 '선택적 언론 공보' 정황은 단체대화방에서 다수 확인된다. 검찰에 수사권고를 하기 전인 2019년 3월 6일 '김학의 임명 배경에 최서원(최순실) 배후설' '청와대 민정수석실 경찰수사 외압' 등의 언론 보도가 나오자 "조사단은 최서원을 면담조사하려고 했으나 최서원이 조사 거부하였고, 조사단은 2013년도 민정수석실 관련자들을 조사 중"이란 문자를 기자단에 배포했다. 풍문이나 전언 수준의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진술에 기반한 면담보고서 내용을 신빙성 있는 의혹처럼 언론에 알린 것이다. 검찰 재수사 결과 '최서원 배후설'과 '민정수석실 외압설'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 접대설' 보도가 나오자, 단체대화방에는 "아주 끈질긴 기자들이 있으면 구두로 별장에서 한상대 명함이 확보된 적 있다는 정도의 멘트는 무방할 것 같다"는 메시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한상대 전 총장이 성접대를 받은 것처럼 연상되도록 언론 대응 방침을 정한 것이다.
윤중천 공개소환 요구에 '적폐청산에 폭탄' 우려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마당에 윤중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조사에 응하고 조사단에 오히려 역제의를 하는 것은 아예 수사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폭탄을 던지려는 게 아닌가 매우 의심이 됩니다. 공개소환 기회에 황당한 사람들을 지목하거나 조사단이 윤중천과 협조 또는 거래했다는 발언이 나왔을 때, 이 일을 막지 못한 책임을 우리 모두 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2019년 3월 22일 오후 10시 25분에는 조사단원 A가 이처럼 장문의 글을 올리며 걱정하는 일도 있었다. 조사단원 B가 윤중천씨의 공개소환 요구와 관련해 '서면 진술을 받아본 후 다시 검토해보자'고 제안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윤씨는 공개소환뿐 아니라 변호인 선임까지 도와달라고 조사단에 요구했지만, 두 안건은 8팀 다수의 반대로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윤씨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고도 단칼에 거절하지 못한 것을 두고는 "윤씨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는 뒷말이 나왔다.
반대로 조사단원 A는 윤씨 입에서 '폭탄 발언'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 그는 "윤씨 진술을 믿기 어렵다. 성과에 욕심 내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원칙에 맞게 조사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도 "윤씨가 조사단 공신력을 이용해 김학의 사건 수사를 하겠다는 정부의 검찰 적폐청산에 대해 폭탄을 던지는 근거 없는 발언을 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이 2019년 3월 25일 김학의 전 차관 재수사를 권고할 때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대상에 포함시킬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진상조사단은 2013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경찰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며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할 것을 검찰에 권고했다. 조사단원 B는 단체대화방에 수사의뢰서를 올리면서 "사실 민정 관련해선 부실 인사검증 및 임명 강행이 핵심인데 조응천까지 수사의뢰 시 민주당까지 뭐라 할까 봐 일단 곽상도만 넣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 시 김학의 전 차관 인사검증을 맡은 만큼 조 의원을 수사대상에 포함시킬 수도 있었지만, 민주당 공격을 우려해 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당시 진상조사단이 곽상도 의원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권고할 때 조응천 의원은 뺀 것을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사단원 A는 그러자 '조응천 의원이 과거 김학의 전 차관을 수사하던 경찰을 질책했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를 대화방에 올리며 "오늘 보도를 보니 조응천을 빼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에 조사단원 B는 "민주당 반발은 하는 소리고, 조응천 범죄사실이 (근거가 없어서 수사의뢰서가) 안 써진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수사권고 대상을 논하면서 '민주당 반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당시 조사단 일부 구성원들이 수사의뢰의 무게감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 게다가 곽상도 의원에 대한 수사권고 역시 전언과 추측으로 가득한 '박관천 면담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라 뚜렷한 근거는 없었다. 곽 의원은 수사권고로 이어진 검찰 재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결과보고서 제출 뒤 뒤늦게 격론
더군다나 진상조사단 8팀이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체대화방을 살펴보면, 8팀 조사가 시작된 2018년 11월부터 대검과 법무부에 최종 결과보고서를 제출한 2019년 5월 말까지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주된 내용은 언론보도 공유 및 평가, 과거사위원회, 정치권 동향, 검찰 수사단 상황 등이었다. 결과보고서 작성이 조사단 활동을 마무리할 때 가장 중요한 업무였지만, 구성원들 간 개략적인 역할분담만 있었을 뿐, 보고서 대부분은 8팀 구성원 6명 중 D가 정리하고 작성했다.
조사단원 사이의 갈등은 결과보고서가 대검에 제출된 이후인 2019년 5월 27일 새벽부터 최종 수정작업을 거친 5월 31일 사이에 불거졌다. 2019년 2월 1일 단체대화방 내용에 따르면 진상조사단은 단원 D 등이 여성들의 진술과 증거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2명은 일부 여성의 성폭력 피해 부분을 맡아 별도 의견을 작성하기로 했다. 조사단원 D를 비롯해 8팀 다수의견은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진술 신빙성이 떨어져 무혐의 판단이 불가피했다'는 것이었지만, 별도 의견 작성자들은 '일부 성폭력 피해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사단원 D는 5월 27일 자신이 작성한 1안과 별도 의견인 2안을 취합해 대검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1안 내용을 뒤늦게 확인한 2안 작성자들이 보고서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대화방에선 "사건 기록을 새로 정리한 뒤 각자 평가만 쓰는 식으로 본문을 다시 작성하자"는 2안 작성자들과,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지키려는 D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급기야 2안 작성자들이 보고서에서 자신들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별도 의견이 200쪽 추가되는 선에서 보고서는 완성됐다.
이같은 갈등 끝에 ‘일부 여성은 피해자 성격이 있을지 몰라도 재수사를 통한 형사처벌까진 어렵다’는 기존 8팀 다수 의견과 무관하게, 과거사위원회 최종 발표에선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여부에 대해선 유보적으로 판단한 채 엄정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이후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김학의 전 차관을 제외하고 윤중천씨만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마저도 '여성 진술 신빙성 문제' 등으로 무죄가 났다.
윤중천ㆍ김학의 백서를 쓰는 이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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