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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표 도시재생’ 갈등 고조…서울시장 바뀐 후 창신동의 두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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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표 도시재생’ 갈등 고조…서울시장 바뀐 후 창신동의 두 표정

입력
2021.04.21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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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표 1호 도시재생지구 가보니
"도시재생 실패" vs "아직 진행 중"
재개발 서명 받고, 한쪽선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경. 최다원 기자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경. 최다원 기자

“자동차는 여기까지만 들어와요. 그래서 다들 오토바이 타고 다니죠."

한적한 한양도성 옆으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힌 '봉제마을'이 있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었고 차 한 대 다니기도 빠듯한 길로 원단 따위를 실은 오토바이가 분주히 달린다. 서울시 1호 도시재생사업지구인 종로구 창신동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낙후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 창신동 일대를 선도지역(창신·숭인)으로 지정하고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더욱이 ‘박원순표 도시재생을 갈아엎겠다’고 공약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며 창신동은 8년 만에 다시 개발의 문턱에 섰다.

"달라진 것 없어...공공재개발이 답"

20일 창신동 골목 어귀에서 만난 강대선 창신동공공재개발추진위원장은 “창신동 도시재생 사업은 0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6년 간 1,100억 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정작 주민들의 요구와는 딴판인 사업들만 진행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주민 숙원 사업은 ‘도로 확장’이었지만 고작 도로 포장 정도만 이뤄져 노인들은 마을 꼭대기까지 꼬박 2㎞를 걸어 다닌다"며 “근래 네 번이나 화재가 났는데 소방차가 못 들어와 고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초기에 이뤄진 마중물사업을 포함해 예산 대부분이 낭비됐다고 평가한다. 마중물사업 예산 200억 원 중 78%는 건축비(봉제역사관 18억 원, 채석장 전망대 7억6,000만 원, 산마루놀이터 27억 원 등)로 쓰였다. 그는 “편의와 무관한 엉뚱한 건축물만 지어놨으니 이용률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두 살배기 아들과 산마루놀이터를 찾은 김모(36)씨도 거들었다. “경사가 너무 가파른데다 시멘트로 깔아놓은 곳도 있어 몇 번이나 아이가 다쳤다. 이런 놀이터에 27억 원이 들었다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가파른 골목길을 한 주민이 걸어올라가고 있다. 최다원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가파른 골목길을 한 주민이 걸어올라가고 있다. 최다원 기자

강 위원장은 도시재생사업이 낙후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데 실패해 마을 노후화와 고령화를 더욱 가속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창신동은 노후화가 72%에 달하는데 어느 젊은이가 이런 동네에 들어와서 살고 싶어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6년 째 변하지 않는 동네 모습을 보며 강 위원장은 ‘공공재개발’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도시재생사업을 해제하고 공공재개발 시행을 원하는 주민 4,210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의원에게 전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며 “창신동은 부분적인 ‘수리’가 아닌 ‘전면적인 개발’이 필요한 동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재생 아직 진행 중...재개발은 원주민 집 빼앗아"

도시재생사업 성패 판단은 이르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손경주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상임이사도 그 중 한 명이다. 창신동에서 봉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손 이사는 “도시재생의 목적은 마을 문화와 원형을 보전하며 발전하는 것”이라며 “주민 숙원사업이라고 말하는 도로 확장은 애당초 도시재생 사업에 포함된 적도 없는데 도로가 넓어지지 않아 실패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 또한 “도로확장은 도시재생 일환으로 논의된 적 없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개업한 창신동의 한 카페. 손 이사는 지역의 명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다원 기자

지난해 7월 개업한 창신동의 한 카페. 손 이사는 지역의 명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다원 기자

‘마을의 고령화’에 대해서도 손 이사는 다른 입장이다. 그는 “도시재생사업 시행 이후 마을 위쪽부터 젊은 주민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신동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도 “최근 3년간 30~50대가 작업실이나 가게를 차리고 거주하려는 목적으로 매수문의를 많이 했다"며 “10건 중 8건은 외지인이라 세대 교체가 어느 정도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산마루놀이터 인근에 개업한 카페는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날도 손님들이 수 없이 드나들며 ‘창신동의 명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손 이사는 공공재개발에 대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공공재개발이 원주민 재정착을 최대한 돕는다고 하지만 분담금 부담은 여전하다”며 “마땅한 직업도 없는 고령의 주민들은 돈을 마련할 창구가 사실상 없어 결국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신동에서 45년째 거주하는 김모(70)씨 역시 “뉴타운을 반대한 이유도 새 집에 들어가기 위해 수 억 원이 필요하단 사실 때문이었다”며 “작고 허름한 집이라도 익숙한 동네에서 사는 게 좋지 이 나이에 어딜 가겠냐”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미싱 소리가 들리는 골목을 지나며 손 이사는 “도시재생의 미덕이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창신동은 동대문도매시장이 가까운 덕에 오랫동안 봉제산업의 클러스터 역할을 해왔는데, 재개발이 되면 마을 문화를 잃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까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 이사는 “창신동 일대의 업체가 3,000여 개, 일자리는 6,000여 개로 추산된다”며 “지리적 이점과 저렴한 임대료로 연명하던 사업체들이 재개발이 되면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6년 도시재생 무색한 주민 갈등

도시재생사업 해제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은 모두 창신동 주민들을 상대로 연대서명을 받았거나 받는 중이다. 재개발 찬반을 놓고 주민들 간 말씨름이 벌어졌다는 소문도 돈다. 박원순표 도시재생 사업이 6년간 진행됐어도 주민 갈등은 그대로다.

다른 도시재생사업 지구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종로구 숭인동과 용산구 서계동 등 9개동 주민들이 참여한 ‘도시재생 폐지 및 재개발 연대’는 지난 1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시재생 사업 폐지를 촉구했다. 이들은 서울 도심의 낙후 지역들이 도시재생에 발이 묶여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권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지자체들도 긴장하는 눈치다. 종로구 관계자는 "재개발 사업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는 걸 알고 있다"며 "혹시 모를 사업 진행에 대비해 구 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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