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에서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원전 그대로 국내에 처음 정식 출판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21일 출판계 등에 따르면 사단법인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을 지낸 김승균(83)씨가 지난해 말 출판사로 등록한 민족사랑방에서 김일성을 저자로 한 '세기와 더불어 항일회고록 세트'라는 이름의 책을 지난 1일 출간했다. 북한에서 출판된 8권 그대로다. 책은 현재 인터넷 교보문고와 알라딘, 예스24 등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중으로, 정가는 8권 세트 28만원이다. 김씨는 북한 관련 무역 등을 하는 중소기업인 남북교역 주식회사 대표로도 알려졌다.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사를 기록했다는 ‘세기와 더불어’는 1992년 4월 15일 김일성 80회 생일을 계기로 북한 노동당 출판사가 대외선전용으로 발간한 책이다.
출판사는 인터넷 서점 책 소개에 "1945년 8월15일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그날까지 중국 만주벌판과 백두산 밀영을 드나들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생생한 기록"이라고 썼다. 이어 "1920년대 말엽부터 1945년 해방의 그날까지 20여 년간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싸워온 투쟁기록을 고스란히 녹여 낸 진솔한 내용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책의 출판이 민족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남북화해의 계기가 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판매 수익금은 통일운동기금에 사용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책의 출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는 반국가단체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한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1년 대법원은 허가 없이 방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모씨에 대해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그가 소지한 '세기와 더불어'와 김일성을 시기별로 우상화한 소설 '닻은 올랐다'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 김일성이 숨진 직후인 1994년 8월에는 도서출판 가서원이 '세기와 더불어'를 국내에서 출판하려 했다가 출판사와 인쇄소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출판사 대표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유해 간행물 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 기준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거나 체제전복 활동을 고무 또는 선동하여 국가의 안전이나 공공질서를 뚜렷이 해치는 것"으로 "보편타당한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민족사적 정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에 해당하면 유해 간행물로 판단한다.
심의 결과 유해 간행물로 결정되면 수거,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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