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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초등학생이 한국의 고3처럼 공부하는 이유는?

입력
2021.04.24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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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인재 양성 위한 교육열 높아
부잣집 자녀만 좋은 대학 가는 문제점도 나와?
고령화와 노후화된 SOC 재투자도 과제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싱가포르 멀라이언파크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싱가포르 멀라이언파크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19> 지리적 요충지에 있는 싱가포르의 생존전략

싱가포르를 설명할 때,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인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싱가포르는 일찍이 중개무역항으로 발전해 왔다.

싱가포르는 총 123개국, 600개 항구와 연결되어 있는 세계 최대 환적항만을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또한 전 세계 90개국, 380여 개 도시를 잇는 항공허브로, 지난 2018년 한 해 역대 최다 이용객인 6,560만 명을 기록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진출 교두보로 활용하고 있다. 7,000여 개의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 60% 이상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로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교통 요충지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는 이들 기업들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그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인적 자원을 보유한 국가가 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는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이 시작되고, 사교육 비중이 높은 나라로 꼽힌다.

한국 고3 같은 싱가포르 초등학생

싱가포르 학교제도는 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4년, 중등 후 교육 2~4년, 대학 4년으로 되어 있다. 초등학교는 4년간의 기초과정과 2년간의 탐색과정으로 이루어지며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마치면, 초등학교 졸업자격시험(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 PSLE)이라는 국가공식시험을 치르고 중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중학교 때부터는 진로가 거의 확실히 정해질 정도로 구분된다.

이처럼 치열한 교육 환경은 자연스럽게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이 가장 활발하다.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과정에서 이미 중등과정의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학교와 학부모 모두가 입시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도 4학년 때의 시험은 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경우가 아닌 학생이면 통과하지만, 6학년 때 치러지는 초등학교 졸업자격시험(PSLE)은 그 시험 결과로 어떤 중학교에 갈 수 있는지가 결정되고, 또 들어간 중학교에 따라 그 후의 주니어 칼리지나 대학이 거의 결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5학년이나 6학년쯤 되면 하루생활이 입시생을 방불케 한다. 이 시기의 자녀를 둔 집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경우, 대부분 개인 과외(tuition)를 받거나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부의 상속 현상과 어렸을 때부터의 편중된 교육이 지적된다. 과외비를 감당할 수 있고 과외로 영어와 수학 등을 도와줄 수 있는 집의 자녀는 좋은 시험 점수를 기록하게 되어 명문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고, 진학 후에도 학교와 부모의 노력으로 사회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실력을 개인 과외로 보충시켜 주지 않으면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점점 공부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 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대부분의 사교육 기관이 학업 또는 체육에 관계된 내용으로 일관되어 어려서부터 예능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고 학교의 커리큘럼도 시험과 관계된 과목 위주로 짜여 있어 공교육 기관에서도, 사교육에서도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과목은 접해보지 못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결코 적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교통의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중계무역과 함께 이러한 중계무역을 지원하는 금융산업을 육성하여 세계적인 금융허브로 발전하였다.

또한 정부의 강한 투자 유치 의지를 기반으로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여 일반적으로 외국기업이 진출했을 때 겪는 애로사항은 많지 않다. 영어 공용화, 투명한 행정, 정치적 안정성, 간단한 조세체계, 선진화된 인프라,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을 바탕으로 세계은행 발표 ‘기업 하기 좋은 나라’ 2위로 꼽힌다. 다만, 싱가포르 정부의 외국인력 제한정책으로 인해 외국인력 의존도가 높은 요식업, 건설업 등의 업종 중심으로 인력관리에 애로를 겪는 기업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싱가포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23일 개학 이후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옹예쿵 싱가포르 교육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싱가포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23일 개학 이후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옹예쿵 싱가포르 교육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교통 요충지로 선박 수리업도 활황

교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알려진 싱가포르는 제조 부문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선박수리업이다. 많은 선박이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만큼 선박 수리를 하기에 최적화된 지역이 싱가포르이다. 선주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배를 수리하기 위해 기존 교역로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유발된다. 이 때문에 평소 선박을 운항하던 통로에 위치한 지역에서 수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싱가포르는 선박 수리가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할 뿐만 아니라 태풍 등 천재지변이 없어 전천후 작업이 가능하다. 오늘날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선박수리산업 및 해양플랜트 산업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지정학적 위치 덕분이다.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그 어느 나라보다 다인종 다문화가 융합된 국가로 발전해 왔다.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의 약 30%(영주권자 포함할 경우 40%)가 외국인으로 구성될 정도이다. 현재 싱가포르는 중국계(74.3%), 말레이계(13.4%), 인도계(9.1%)를 비롯한 기타(3.2%)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 역시 불교(33.3%), 기독교(18.3%), 무교(17.0%), 이슬람교(14.7%), 도교(10.9%), 힌두교(5.1%) 등 세계 종교가 활동하고 있는 국가이다. 언어 역시도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4개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싱가포르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와 그 외에 1개의 모국어(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 택일)를 배워야 한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적어도 2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고령화, SOC 재투자 등은 과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비약적인 성과를 보여왔던 싱가포르 역시 최근에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급격한 고령화 추세이다. 싱가포르는 고령화로 인한 헬스케어 지출이 2011년 39억 싱가포르달러에서 2018년 102억 싱가포르달러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싱가포르의 경쟁력의 원천이었던 각종 사회 인프라가 노후화되어 막대한 재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향후 10년간 철도망 확대, 창이공항 제5터미널 개발, Tuas 항구 개발 등 낙후되고 노후화된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야 할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농업 부문에 대한 투자 또한 시급한 상황이다. 식품 수입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싱가포르는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기초적인 농산물 수급 부문의 어려움을 확인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2030년까지 자체적인 식량 생산비중을 30% 수준까지 높이려는 목표를 설정한 상태이다. 국토 면적이 작은 상황에서 농업 수행을 위한 공간을 도시 내 농업(Urban Farm), 수경재배, 수직농업(Vertical Farm) 등을 통해 수행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한 상황이다.

아시아의 가장 가난한 어촌 지역이었던 싱가포르는 자신들이 보유한 지리적 이점과 이를 십분 활용할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그간 놀라운 성과를 달성해 왔다. 하지만 최근 싱가포르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 환경은 그리 녹녹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속되는 미?중 무역 분쟁과 중국의 더딘 경제성장, 코로나 19로 인한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싱가포르 경제에는 커다란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어떠한 대안을 내놓을지 지켜보자.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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