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남녀 '그래니 룩'·'그랜드파 스타일' SNS서 인기
온라인 쇼핑몰 관련 제품군도 확장 추세
코로나 스트레스로 '옛 것' 향수 늘어
처음에는 노인 옷차림 같다는 말을 들어 망설였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착용한 모습을 보면서 니트 조끼를 꾸준히 더 사게 됐어요.
미국 뉴욕의 고교생 대니얼 핀토는 요즘 푹 빠져 있는 니트 조끼 패션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니트 조끼가 섹시한 아이템으로 돌아왔다'는 15일(현지시간) 기사에서 "핀토와 같은 젊은 소비자들의 반응은 평범한 니트 조끼가 인기 패션 아이템이 됐음을 방증한다"며 그의 말을 전했다. 2년 전 니트 조끼를 처음 구입한 핀토는 지금은 니트 조끼를 50벌이나 갖고 있다.
NYT는 이 같은 소비자 반응과 함께 "지난해 가을 열린 2021 봄·여름 패션쇼에 나선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니트 조끼를 선보였다"며 니트 조끼를 최신 패션 아이템으로 소개했다.
니트 조끼의 인기는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할머니 패션' 또는 '할아버지 스타일'의 연장선상이다. 몇 년 전부터 패션계는 노년층이 입을 법한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그래니(granny·할머니) 룩', '그랜드파(할아버지) 스타일'을 주목해 왔다.
지난달 말 패션지 로피시엘 미국판은 "할아버지의 니트 조끼가 또다시 쿨한 아이템이 됐다"며 니트 조끼가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를 전했다.
이달 초 뉴질랜드 매체 스터프도 "지난 20년 동안 TV 속 할아버지와 괴짜들의 전유물이었던 니트 조끼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입으면서 멋쟁이 아이템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특히 방탄소년단(BTS)의 지민과 태형(뷔)이 콘서트에서 입어 보이면서 니트 조끼는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은 특히 SNS를 통해 니트 조끼를 비롯해 니트 카디건,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 등으로 대표되는 노년층의 옷차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년층의 다양한 거리 패션을 소개하는 패션 컨설턴트 카일 키비야르비의 인스타그램 계정 '그램페어런츠(@gramparents)'의 팔로워는 13만6,000명에 이른다.
대만인 창완지(83)·허슈어(84) 부부의 인스타그램 계정 '원트쇼애즈영(@wantshowasyoung)' 팔로워는 65만5,000명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들 부부는 고객이 찾아가지 않은 옷 수백 벌을 자신들에게 어울리게 맞춰 입고 사진을 찍어 올려 유명 인사가 됐다. 이들은 지난해 가을 타이페이 패션위크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1일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쇼핑 플랫폼 리스트(Lyst)에서 '세련된 할머니 스타일'을 뜻하는 '그래니 시크(Granny Chic)' 검색량은 최근 몇 주 동안 급증했다.
국내에서도 온라인 쇼핑 사이트 지마켓에서 '손뜨개'를 검색하면 200여 종이 검색된다. 지마켓 관계자는 "티셔츠 위에 겹쳐 입는 손뜨개 느낌의 뷔스티에(코르셋 재해석한 상의)나 볼레로(짧은 조끼) 등도 많이 나와 있어 니트 제품이 단지 보온뿐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패션 광고 모델까지 꿰찬 '우아한 장·노년층'
노년층 스타일에 관심을 보이는 SNS 이용자들이 늘면서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10~20대 초반 여성이 주로 찾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 지그재그는 70대 여배우 윤여정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미국 기업 뉴발란스는 이번 달 장·노년층 모델이 등장하는 신문 광고를 선보였다. 뉴발란스는 뉴욕 디자이너 브랜드 에임 레온 도르 창업자인 테디 산티스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정했다. 광고에서 산티스는 젊은 모델 대신 장·노년 모델들과 함께 뉴발란스 신발을 신고 있다.
인스타그램 그램페어런츠 운영자 키비야르비는 그동안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해 온 노년층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옷을 6월 출시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본사를 둔 브랜드 어나더 애스펙트와 협업 제품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스트레스가 향수 불러"
그렇다면 2030세대가 앞선 세대의 옷차림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션의 속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한다.
"현대적 패션 트렌드에 좀처럼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는 키비야르비는 "우리가 스타일과 패션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달라 (노년층 패션은) 자연스럽고 신선해 보인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혔다.
또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모데차이 실로모 루빈스타인은 "노년층 스타일의 특별함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다"며 "그들은 유행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스트레스로 '옛 것'에 대한 향수로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2030세대가 늘었다는 분석이 많다.
영국 스타일 컨설턴트 이사벨 스피어먼은 텔레그래프에 "젊은층이 '그래니 룩'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난해 받은 스트레스로 향수에 젖게 됐기 때문"이라며 "많은 여성이 화려한 색상의 드레스와 커다란 카디건을 통해 바깥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처럼 노년층의 스타일이 SNS 등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노인들은 주류 패션 업계에서 여전히 소외돼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인구 고령화로 노년층의 비중은 커지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마케팅이나 상품 기획은 크게 늘지 않았다는 평가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장수센터(ILC)의 소피아 디미트라디스 연구원은 "영국에서 50세 이상이 옷·신발 지출의 21%를 책임지고 있다"며 "하지만 영국 패션 업계 상품은 노년층 소비자의 몸매 변화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광고는 '패션은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만 담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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