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함께 비핵화와 대북 제재 문제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남북 관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수가 됐다. 미중 갈등은 남북 관계 개선에 우호적 환경을 마련하기보다 기존 대립구조를 더욱 고착시키는 위협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북한은 국경을 굳게 닫고 있다. 여러모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한 조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이 지난 1월 8차 당 대회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한 노선을 발표한 건 이러한 요인을 염두에 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현재는 큰 목표를 좇기보다 남북 관계 재개와 더불어 비핵화 협상에 남북이 함께 진입하기 위한 입구 전략을 모색하는 게 급선무다. 일괄적, 포괄적 해법 제시보다 단계적, 점진적 로드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인영 장관이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해 후보자 시절부터 제시한 ‘작은 교역’은 하나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 물물교환의 차원을 넘어 첫째, 남북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주고받음으로써 양측 경제가 보완되어 번영할 수 있다는 ‘유무상통의 원리’와 함께 ‘대등관계’ 속에서 상생·협력의 의미를 가진다.
둘째, 기술협력을 동반한 인적교류를 가능케 한다. 과거 남북협력 사업에서 경험했듯 농업 부문이라도 늘 기술협력을 동반했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선 북한이 남한 사람의 왕래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기술협력을 동반한 상품 교역이라면 남북 모두 전문 인력파견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을 통감할 것이다. 인적 왕래를 통한 기술 교류는 개발 협력과도 연동시킬 수 있다. 제재가 완화 이후 합영 단계로 발전시키면 향후 남북 경제의 상호의존도를 높이는 기반이 될 것이다.
셋째, 작은 교역은 이미 남북 간 경험한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2006년과 2007년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따라 한국은 북한 경공업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단천의 지하자원을 받았다. 기술자 파견 및 사회기반시설(인프라) 협력으로도 확장됐다. 북한이 보다 향상된 설비와 자재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내수시장 확대뿐 아니라 해외 수출도 가능해져 자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은 교역은 대북 제재하에서도 실천 가능한 방법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중국이나 러시아는 북한과 제재 이외 품목에 대한 무역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다만 작은 교역이 남북 관계 재개로 이어지려면 민간의 자유로운 왕래와 교역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는 국가의 법·제도 정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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