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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들려주는 이야기

입력
2021.04.2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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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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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 어릴 적에 할머니와 대청마루에서 한가로이 보내던 여름 오후가 떠오른다. 과학 시간에 배운 구름이란 공기 중의 수분이 엉기어서 공중에 떠 있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 구름은 물리적 존재만은 아니다. 이 땅의 누구든 구름을 보며 살고 있으니 구름에 담긴 이야기 또한 얼마나 많을까? ‘구름 갈 제 비가 간다.’는 말이 있다.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긴밀한 인간관계를 빗대는 말이지만, 이처럼 옛사람에게 구름은 무엇보다도 날씨의 전령사였다. ‘비구름, 눈구름, 물구름’ 등에는 구름의 성질이 담겨 있다. 비를 몰고 오는 시커먼 ‘먹구름’, 비를 머금은 검은 조각구름인 ‘매지구름’도 있다. 지나가는 구름은 ‘열구름’이다,

뭐니뭐니 해도 구름은 연상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다. ‘뭉게구름, 새털구름, 토막구름’에서 구름의 모양은 곧 그 이름값이다. 솜과 같으면 ‘솜구름’, 물결 같으면 ‘물결구름’ 작은 꽃술 같은 ‘송이구름’이다. 비슷한 모양이 여러 개 겹치면 ‘겹구름’, 떼를 이루어 가면 ‘떼구름’인데, ‘양떼구름, ‘나비구름’이 말해 주듯 사람들 마음속에서 구름은 양떼이고 나비이다. 구름이 여러 빛깔이면 ‘꽃구름, 오색구름, 무지개구름’으로, 붉게 노을 지면 ‘놀구름’으로 부른다.

구름은 땅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생활을 그리기도 한다. 구름처럼 가볍고 아름답다는 ‘구름옷’, 칼로 자른 단면이 구름 모양이라는 ‘구름떡’, 계곡을 건너질러 공중에 걸쳐 놓은 ‘구름다리’ 등은 일상에서 만나는 구름의 흔적이다. 구름더러 양떼라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라 하고, 뽀얗게 일어나는 흙먼지는 ‘흙구름, 먼지구름’이라 말하니 무엇이 무엇을 빗대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어디 이뿐이랴. 구름은 삶의 이모저모를 빗댄다. ‘뜬구름’은 세상일이 덧없다고 할 때 제격이다. 막연하거나 허황된 것을 두고 쓰는 ‘구름 잡는 소리’, ‘구름 같은 인생’은 구름이 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장마철에도 간간이 ‘구름짬’으로 해가 보이듯, 구름같이 슬쩍 지나가는 ‘구름결’에 걱정거리가 ‘구름 걷히듯’ 깨끗이 사라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서 구름을 내려다보고, 구름을 만들어 날씨도 바꿔 보려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쓱쓱 넘기면서 이젠 구름으로 날씨를 읽지 않지만, 오늘도 구름은 잃어가는 우리말을 담고서 흘러간다. 오늘 하늘에는 어떤 구름이 떠 있을까?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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