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장난감 포장공간비율 35%로 가장 느슨
각종 완화 예외 기준 더해져 60%로 높아져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9>장난감 포장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설레는 '어린이 날'(5월 5일)이 다가온다. 화려하고 큰 선물일수록 앞뒤 재지 않고 좋아하는 아이들. 그러나 아이들에게 '크고 화려한' 선물을 주는 부모의 마음은 편하지 만은 않다.
우선 장난감 본체는 소형 복합 재질인 데다가, 대부분 가정에서 분리 배출할 수 없는 플라스틱(ABS)을 쓴다. 재활용이 안 되지만, 환경호르몬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편의성ㆍ품질 등이 우수해 업계는 수십 년째 ABS를 쓰고 있다.
장난감 자체는 오래 사용하고 물려주기도 한다고 위안을 삼는다지만, 포장은 어떤가. 어린이 장난감 과대 포장은 성인 소비재보다 그 수위가 심각하다. 환경 문제는 아이들의 미래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면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장 2027년 수도권 매립지 사용이 끝날 것으로 예측되고 수도권 주민 2,500만 명의 폐기물을 어디에 묻을지 정해진 것이 없을 정도인데도,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다는 장난감 포장들을 보면 어떤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포장 판매 장난감에서 포장이 차지하는 공간이 60%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의 기준(포장공간비율 35%)을 충족하고 있었다. 포장을 벗겨낸 알맹이와 포장을 비교해보면, 제품이 포장의 반절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고정재·장식을 끼워넣으면 제품 본체의 부피를 가산해 주는 점 등 제도 허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포장 차지 60% 넘지만… 고정재 묶자 ‘33.4% 합법’
한국일보는 국내 대표적인 완구 3사 제품 중 4개를 골랐다. ①영실업의 ‘콩순이 믹서기쉐이크놀이(콩순이)’ ②손오공(초이락컨텐츠컴퍼니)의 ‘헬로카봇 카봇뱅 페로B(카봇뱅)’와 ‘헬로카봇 카봇쿵 큐브팩세트E(카봇쿵)’ ③오로라월드의 ‘신비3 더블X 고스트컬렉션 6번(신비3)’이다. 계열사까지 합치면 모두 한 해 매출액 1,000억 원이 넘는 대형 완구업체들이다.
환경부는 과대포장을 규제하는 포장공간비율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장난감은 빈 공간 비율을 35%로 허용해 모든 품목 중에 가장 느슨하다. 음료·주류·화장품류가 10%이며, 가공식품·건강기능식품·세제류는 15%인 것과 비교하면 2, 3배의 포장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영실업의 콩순이는 한국환경공단에서 포장공간비율 33.4%를 책정 받아 합격 판정을 받고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포장공간 비율 준수 여부는 사후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속하지만, 기업들이 원하는 경우 사전에 심사를 받을 수 있다. 환경공단은 환경부 고시인 ‘포장공간비율ㆍ포장횟수 간이측정방법’에 따라 포장공간비율을 측정해주는 업무를 맡는다.
그러나 법정 기준을 준수한 콩순이의 실제 포장 공간은 전체의 약 60% 정도에 이른다. 이는 어쩌다가 33.4%가 됐을까.
대표적인 꼼수가 고정재를 사용하거나, 종이·플라스틱 장식을 끼워넣은 것이다. 제품에 고정재를 사용할 경우 본체의 가로ㆍ세로ㆍ높이에 0.5cm를 합산해준다. 콩순이는 믹서기와 냄비, 받침을 철사로 고정했고, 과일과 과일칩, 컵엔 플라스틱 고정재를 사용했다. 그 결과 제품 부피가 고정재를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약 1만4,054㎤)보다 약 10.5%(1,475㎤) 크게 계산된다.
한국일보가 ‘고정재 0.5cm 가산’을 적용하지 않고 콩순이의 포장공간비율을 계산하자 40.3%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또 정부의 기준은 제품 부피를 잴 때, 제품이 실제로 차지하는 부피가 아니라 ‘제품 전체를 감싸는 직육면체’를 기준으로 한다. 직육면체와 장난감 사이 빈 공간도 전부 제품의 부피로 계산되는 허점을 기본적으로 갖게 된다.
이밖에 콩순이는 포장재로 내부 종이 상자, 플라스틱 트레이, 종이 안내판, 철사 등을 사용했다. 이중삼중으로 포장 폐기물을 늘리는 요소들이지만, 포장재가 아닌 '고정재'로 분류되어 되레 포장공간비율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부피가 없어서”… 시트형 플라스틱 포장은 규제도 없어
손오공의 헬로카봇 시리즈는 ‘블리스터 포장’이 포장 부피로 계산되지 않는 점을 이용한 경우다. 블리스터 포장이란 포장재를 상자 형식으로 만드는 대신, 얇은 시트 두개를 붙여 접착시키는 포장 기법이다. 제품 부위만 볼록하게 만든 모습이 물집과 비슷해 블리스터(blisterㆍ물집)라고 이름 붙었다.
칫솔ㆍ건전지 등에 주로 쓰이는 이 포장은 상자를 만들 때보다 포장재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종이에 제품을 얹고 제품 부분만 플라스틱으로 덮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로카봇 시리즈는 상황이 다르다. 제품보다 훨씬 넓은 플라스틱을 앞뒤로 덮었다.
카봇뱅의 경우, 두 개 장난감의 가로ㆍ세로 면적이 총 130.9㎠ 정도인데, 넓이 585㎠짜리 플라스틱 시트 2장을 사용한다. 실제 장난감이 차지하는 면적은 약 22.4%뿐으로 나머지 454.1㎠는 사실상 필요 없는 포장인 셈이다. 카봇쿵의 경우, 한 면이 3.61㎠인 정육면체 알맹이 4개를 포장하기 위해 230㎠짜리 플라스틱 시트 2장을 썼다. 시트 한 장만 치더라도 15배쯤 된다.
그러나 이 제품들은 전부 정상 포장으로 분류된다. 포장공간비율은 ‘부피’를 단위로 측정을 하는데, 2개 면이 밀착돼있는 블리스터 포장의 경우 부피가 계산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카봇쿵처럼 면적을 잔뜩 늘려도 제재받지 않는다.
기준 어긴 제품도 버젓이 유통
오로라월드의 신비3는 포장공간비율 검사를 받지 않았다. 포장공간비율 검사는 지자체가 단속을 하거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검사 의뢰를 했을 때만 이뤄지는데, 이 제품에 대해서는 단속도, 업체의 자발적 검사도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이 제품을 측정했을 때, 포장공간비율은 약 74.6%로 기준을 2배 이상 위반하고 있었다. 시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형 업체의 제품조차 검사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실제 2019년 지자체가 포장공간비율 검사를 명령한 건수는 1,650건밖에 안 된다. 지자체가 명령하면 업체가 환경공단에 의뢰해 검사를 수행하게 된다.
이 제품은 고정재 명목으로 대형 플라스틱 트레이를 쓰고 있고 그 위를 덮은 플라스틱 뚜껑이 또 따로 있다. 겉의 종이 포장재만으로 제품을 촘촘히 배치하고 작은 종이 고정재 등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부피가 큰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과열된 포장 경쟁… 대형 업체가 앞장서 없애야”
업체들은 정부의 기준을 최대한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영실업은 “다양한 구성품을 박스 하나로 포장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위해 고정재를 사용하고 있다”며 “모든 신제품을 만들 때 법 기준에 맞춰 박스 크기와 포장 방법을 정하고, 종이ㆍ고정재 사용을 최소화하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종이 재질ㆍ잉크 등 친환경에 대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이락컨텐츠컴퍼니는 “한국환경공단 등에 포장공간비율 사전검사를 의뢰하는 등 관련법을 준수하고 있다”며 "완구 특성상 아주 작은 제품인 경우 법적 표기사항을 준수하느라 포장 면이 넓어질 수 있으나 늘 과포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오로라월드는 여러 차례 문의에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시민사회는 업계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며 오히려 과대포장 경쟁이 붙어 있다고 진단한다.
1998년부터 장난감의 재활용 문제를 제기해 온 박준성 사단법인 트루 사무총장은 “현재 장난감 시장에서는 포장이 작으면 팔릴 수가 없다”며 “인지도가 있는 대형 완구 업체부터 가능한 한 크게 포장을 만들다 보니 다른 업체들은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난감 업계는 대다수 영세하다 보니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분담금조차 내기 버거워 하지만, 포장이 작으면 팔리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과대포장을 하기도 한다”며 "환경에 관심을 가진 업체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심지어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완구는 포장재도 제품의 일부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장난감에 유독 느슨한 규제 언제까지
콩순이 사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유명 장난감 업체들은 정부 기준을 준수하면서도 충분히 포장을 과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제도상 보완이 꼭 필요함을 보여준다.
장난감의 포장공간비율을 35%까지 허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고정재 등을 이유로 또 기준을 완화해 주는 것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블리스터 포장에 대해서도, 장난감 자체만 플라스틱으로 딱맞게 덮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환경부 관계자는 "고정재를 사용하면 본체 크기를 1cm 더 인정해 주던 것을 지난해 0.5cm로 줄였다"며 "두 개 이상 제품을 포장할 때 고정재를 사용하면 제품 간 거리를 둬야 해 필수적으로 공간이 필요해 그만큼의 가중치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리스터 포장에 대해서는 "환경공단에서도 사각지대라는 보고를 받는 등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이를 규제하는 해외 입법례가 없어 제도화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포장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서는 "제품 출시 전 포장공간비율을 검사하게 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등 개선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포장규제의 빈틈을 메우고 업체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재영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부산울산지원장은 “블리스터 포장은 제도가 규제할 수 없는 사각지대여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성 사무총장은 "포장의 종류가 다양하고 업체들이 영세해서 일괄 규제가 어렵다면 최소한 자발적 협약으로라도 포장을 감축하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