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차, 명품, 술, 여행 등 '바나레(멀리하다)' 현상
실용적이고 담백한 소비가 시대정신과 부합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자동차, 명품, 술에 무관심한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기성 세대의 우려
일본의 젊은이들은 소비에 소극적이다. 자동차나 고가의 명품을 사겠다는 의지도 없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외식에도 큰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 과거 샐러리맨의 꿈이었던 해외 여행에도 무관심한 편. 90년대 ‘버블 시대’를 상징하는 호탕한 음주 문화에 대해서는 되레 비판적이다. 실제로 소비 통계를 보면, 젊은 층의 자동차 보유율은 떨어지는 추세다. 명품이나 해외 여행 같은 사치성 소비에 대한 선호도 높지 않다.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자동차를 열혈 취미로 삼은 마니아는 있어도 언젠가 자기 차를 꼭 사겠다는 젊은이는 드물다. 여차하면 렌터카를 이용하면 되지, 굳이 내 차를 살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실 일본에서 자기 차를 유지하는 데엔 돈이 꽤 든다. 맨션이나 아파트 등 공동 주택에서도 매달 몇 만 엔이 넘는 주차장 이용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고, 자동차 검사 비용이나 세금도 한국보다 훌쩍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마이카’를 구입하는 ‘플렉스’(돈 자랑을 뜻하는 속어)를 부리는 젊은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니 더 비싼 것, 더 좋은 것을 소비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저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젊은이들의 식어버린 소비 욕망에 대해 걱정들이 많다. 젊은이들의 이른바 ‘바나레’(‘멀리하다’는 뜻의 일본어 ‘離れ’의 음독) 현상이 자주 회자된다. 자동차를 사지 않는 ‘구루마(자동차를 뜻하는 ‘車’의 음독) 바나레’, 술을 마시지 않는 ‘알코올 바나레’, 열도 밖 세계로 눈을 돌리지 않는 ‘해외 여행 바나레’ 등의 말에는 젊은이들의 패기 부족, 도전 정신의 결여를 걱정하는 기성 세대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일본의 젊은이는 왜 소비를 멀리할까?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 소비하지 않을까?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은 ‘돈이 없기 때문’일 것 같다. 비싼 차나 고가의 명품을 갖고는 싶으나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은 층의 절제된 소비를 장기적 불황과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위축 효과로 이해하는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그런데 이 경제적 가설의 근거가 의외로 희박하다. 계속된 불황으로 전반적으로 양질의 직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일본 젊은이들의 지갑 사정이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지갑이 얇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회 경험이 짧은 젊은이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연적으로 상대적 빈곤층에 속한다. 즉, 요즘 젊은이들이 돈이 없기 때문에 소비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지금의 젊은 층이 버블 시대의 젊은 층보다 돈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막상 통계 지표는 정반대의 상황을 가리킨다. 젊은이들의 가처분소득은 과거에 비해 증가했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한편, 독신을 선택하거나 결혼을 늦추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남녀 불문 원하는 대로 돈을 쓰는 ‘소비 자유도’도 높아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요즘의 일본 젊은이들이 ‘돈이 없기 때문에 소비하지 않는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생각하기 쉬운 답변은 ‘미래가 비관적이기 때문에 소비보다 저축을 택한다’는 심리적 관점에서의 설명이다. 앞으로 더 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 때문에 젊은이들이 당장의 소비 대신 현금을 비축하는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20대들과의 술자리에서 ‘복권이 당첨되어 갑자기 큰 돈이 생기면 무엇을 할까?’라는 화제가 나온 적이 있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다든가 내 가게를 열겠다든가 패기만만한 이야기가 튀어나올 줄 알았더니, 입을 맞춘 듯 “돈을 은행에 넣어놓고 두고두고 생활비로 쓰겠다’는 김빠지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의 선택이 소극적인 소비 행동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요동치는 글로벌 경제, 빈발하는 자연 재해, 예상치 못한 팬데믹 위기 등 격변하는 시대 속 동시대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생활 전략이기도 하다. 버블 시대의 젊은이들이 자동차나 고가의 브랜드를 구입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일본 경제가 줄곧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기에 도전 정신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불투명한 미래를 의식해 보수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버블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과시성 소비에 편승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전 정신이 없다’고 평가 절하할 일은 아닌 것이다.
달리 보자면 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선택하는 실용적이고 담백한 소비가 지금의 시대 정신에는 더 잘 맞는다. 젊은이들이 신차를 구입하지 않는 것은 멋진 차를 굴려 보겠다는 패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필요에 따라 렌터카를 활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환경친화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명품 소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브랜드보다 나만의 개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외식에 애먼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반조리식품을 활용하면 집에서도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술자리보다는 혼자 즐기는 디저트가 더 행복하다. 인터넷에서 전 세계의 신박한 정보를 늘 접하다 보니 외국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도 옅어졌다. 기성 세대에게는 도전 정신의 결여인 양 비칠지 몰라도 젊은이들의 선택은 그들 나름의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 전략이다.
일본의 한 사회학자는 젊은 층의 이런 소비 전략을 ‘0(제로)의 소비 문화’라고 이름 붙였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던 기성 세대와는 달리, 요즘의 젊은이들은 소비를 통해 정신적, 문화적 가치(예를 들어, 자연 환경과의 친화, 채식주의 등)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과시적 소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경우에 따라 소비를 포기하는 ‘반소비주의적’ 태도도 나타나는데, 이런 경향 역시 시대상을 반영한 일종의 소비 문화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소비 전략이 기성 세대의 왕성한 소비 욕구를 지렛대로 성장한 기업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가 없다. 실제로 젊은 층의 소비를 문제시하는 담론은, 자동차 회사나 대형 유통업체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관점만 달리하면 젊은이들의 소극적인 소비 성향은 기후 변화나 환경 파괴 등 이 시대의 당면 문제를 의식한 적극적인 소비 운동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아직 ‘주류’는 아닐지언정 젊은이들의 절제된 소비 행동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문화적 가치가 싹터 부지런히 자라고 있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기성 세대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젊은이들의 새로운 취향과 전략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는 사회적 노력이 미흡했던 것이다.
◇기성 세대의 고정 관념을 걷어내지 않으면 젊은이의 진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해서 기성 세대의 관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 속에서 고착화된 고정 관념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가리는 장애물이 된다. 최근 한국에서는 보궐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선거에서 20대가 보수 성향의 후보에 몰표를 준 결과를 두고, 젊은이들이 ‘보수화했다’, ‘진보를 버렸다’, 혹은 ‘특정 세력에 대한 혐오가 커졌다’는 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 나름의 근거가 없지는 않겠지만, 기성 세대의 정치적 담론이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케케묵은 이데올로기를 답습해 ‘우군이냐, 적군이냐’는 잣대로 젊은이들을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구시대의 고정관념을 걷어내지 않으면, 동시대 젊은이들의 진짜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칼럼에서 언급한 ‘0의 소비 문화’는 間?田孝夫(2016)『21世紀の消費: 無謀、絶望、そして希望』 (ミネルヴァ書房)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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