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억 명분을 확보한 정부가 집단면역 시기를 앞당기고 부분적 일상 회복, '백신 허브국가'로의 도약을 거론하는 등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백신 접종률이 4%대로 미국, 유럽 등에 비해 크게 뒤지는 데다 백신 공급 불확실성도 해소되지 않았기에 좀 더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백신, 정부 계획대로... 정치화 그만"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지금 단계에서는 백신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화해 백신 수급과 접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며 "정부 계획대로 4월 말 300만 명, 상반기 중으로 1,200만 명 또는 그 이상의 접종이 시행될지 여부는 조금만 더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일"이라 강조했다. 정부가 목표대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백신 공급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지적이 잇따르자 직접 반박에 나선 것이다.
정부의 자신감은 지난 24일 정부가 발표한 화이자 백신 2,000만 명분 추가 공급 계약과 맞닿아 있다. 화이자 추가 계약으로 정부가 확보한 백신은 총 9,900만 명분으로 늘었다. 전체 인구가 2번씩 접종할 수 있는 양이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부총리도 이날 '코로나19 백신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최근 추가 확보된 화이자 2,000만 명분 등을 토대로 집단면역 시기를 11월 이전으로 단 하루라도 더 당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접종 속도전 나선 정부 ... 7월엔 하루 100만 접종
이 자신감이 현실로 이어지려면 백신 공급의 90%가 집중되어 있는 3분기, 그러니까 7월부터 접종 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려야 한다. 방역당국은 이를 위해 3분기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 기관을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기관으로 확대키로 했다. 화이자 백신은 애초 영하 75도에서 보관·유통해야 했지만, 최근 영하 15~25도 사이에서 2주간 보관 가능한 것으로 조건이 변경됐다. 접종 속도를 끌어올리려면 의료기관 중에서도 일정 정도 설비를 갖춘 곳은 백신 접종을 할 수 있게 해야 해서다. 예방접종센터도 현재 204개에서 이달 말까지 260개로 늘린다. 센터당 하루 600명을 접종한다면, 260개 기준 하루 15만 명 접종이 가능해진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7월부터는 하루 100만~150만명까지도 접종이 가능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위험군 등 1,200만 명에 대한 접종 완료'라는 상반기 목표가 달성되면 전체적인 방역수준 완화도 고려한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고령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1차 접종이 끝나면 코로나19 위험성이 상당히 낮아진다"며 "이들에게 면역력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5인 이상 모임 금지나 거리두기 체계상 규제정책을 조금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 수급 불안정, 부작용 불안감 해소가 관건
이를 뒷받침하려면 백신이 제때 들어와야 한다. 2분기 중 도입 예정이라던 노바백스, 얀센, 모더나 271만 회분은 4월 말이 다 되어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 3분기 이후 들어올 물량에 대해서도 구체적 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기일 범정부 백신도입TF(태스크포스) 실무지원단장은 "정부는 월별 도입 물량을 알고 있지만, 비밀유지협약에 따라 이를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백신의 신뢰도도 회복해야 한다. 백신 접종 후 사망·중증으로 신고된 사례가 99건에 이른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희귀혈전증 문제로 불안감을 키웠다. 이 때문에 2분기 접종 대상자 중 접종 동의율은 현재 75% 수준에 그쳤다. 정부와 백신에 대한 신뢰도를 좀 더 끌어올릴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화자찬 대신 불확실성 최소화할 촘촘한 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의 자화자찬보다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촘촘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접종 기간 자체가 늘어지면 초기 접종자들은 면역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고, 변이 바이러스 문제도 있어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며 "백신 추가 확보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접종 속도는 접종자가 늘고, 접종으로 인한 편익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등의 환경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빨라질 것이고, 백신 수급도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전략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며 "정부도, 언론도, 국회도 모두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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