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콘텐츠에 '남녀 동수'는 없다
여성 캐릭터 주변화되고 악역 담당 많아
<1>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지다
편집자주
아이들의 우주는 무한합니다. 여기에 알록달록 다양한 빛깔을 더해줘야 할 동화책과 교과서, 애니메이션이 되레 이 세계를 좁히고 기울어지게 만든다면요? 한국일보는 4회에 걸쳐 아동 콘텐츠의 '배신'을 보도합니다.
2,596만명 대 2,586만명. 한국에 살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수(2021년 기준)다. 당연히 전 세계 성별 인구 비율도 비슷하다.
그러나 어린이 콘텐츠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세계다. 어린이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라는 '통큰 리더십 동화'(한국 톨스토이) 전권 60권 중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편은 단 4권이었다. 남성(27권) 주인공뿐 아니라, 동물·식물(29권) 주인공에도 밀렸다. 을파소의 철학동화 시리즈(총 50권)의 주인공도 남성은 32권, 여성은 단 8권이었다. 한국일보가 살펴본 전집류(총 10개) 중 주인공의 성비가 엇비슷한 책은 단 한 시리즈(똑똑똑 성교육 동화·키움북스)뿐이었다.
지난해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EBS가 제작에 관여한 19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들여다본 결과 총 720명(중복 등장 포함) 중 남성 캐릭터는 60%(432명)였지만, 여성 캐릭터는 29.7%(214명)에 그쳤다. 나머지 10.3%(74명)는 성별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야기 속에서 대부분 '조연'인 여성 캐릭터는 갈등을 유발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동물 우화에서조차 이런 공식은 적용됐다. 다쳐서 위험에 빠진 얼룩말은 '여동생'으로 그리고, 용감한 사자나 동생들을 돌보는 여우 같은 능동적인 캐릭터는 남성 명칭인 '형'이라고 호칭한다.
소수의 여성을 비주인공 및 제한적인 용도로만 배치하다 보니, 악역이나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둘이 모여 하나'라는 작품에서도 아이가 학교에서 젓가락 대신 포크를 몰래 쓰다가 혼났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는 "뭐 그 따위 선생님이 다 있나"라면서 따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아빠는 "내 자식이 잘못한 일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서는 안 돼요"라며 '위엄 있는' 모습으로 말린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아이를 괴롭히고 경쟁을 조장하는 사람은 엄마, 아이를 차별하거나 수업에 불성실한 사람은 여교사, 가게 주인이 어린이를 박대할 때 여주인으로 나오는 등 작품 안 악역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별에 따라 윤리적인 행위가 편향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 싣는 순서> 뒤로 가는 아동콘텐츠
<1>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지다
<2> 모욕을 주는 성교육
<3> 재미로 포장된 외모비하
<4> 차별 없는 아동콘텐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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