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출처 확인이 중요한 이유
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주인공 혜원(김태리 역)이 고향으로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혜원은 집 주위에서 손수 구한 재료들을 가지고 제철음식을 만들어 낸다. 봄 향기를 담아낸 아카시아꽃 튀김과 눈 속에 파묻힌 배추 한 포기는 사람의 온기를 되살리는 배춧국이 된다. 하지만 우리 이야기는 혜원의 식탁이 아닌 고등어김치찌개가 끓고 있는 당신의 식탁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주인공처럼 한 끼 자급자족의 저녁식사를 위해 남해에 나가 그물을 치고 고등어를 잡아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마도 수산물 시장이나 대형 마트에 가서 기름지고 푸른색 등을 가진 고등어를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값을 계산하도록 결정하는 것은 ‘원산지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일 것이다.
음식에서 재료의 원산지 정보를 확인하는 것을 ‘출처(provenance)'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출처라는 말이 1980년대 문화재 분야에서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각종 식재료를 포함해 여행용 가방, 제조품 등으로 확대되어 재료의 원소재지부터 가공이나 유통의 이력을 확인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재에 있어 출처를 확인하는 것은 음식 재료의 원산지 정보를 확인하는 것과 다르다. 문화재 취득에서 출처 확인을 게을리한다면 체포되거나 적어도 재산상 손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룡 화석 낙찰 받았지만... 출처 확인 게을리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굴욕
2004년 미국 영화 '내셔널 트레져'에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는 보물 사냥꾼이 되어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들이 남긴 국가 보물을 찾아다녔다. 결국 악당을 물리치고 해피엔딩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07년 3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자연사 경매가 개최됐다. 주목받은 것은 타르보사우루스 바타르(T. 바타르)라고 불리는 몽골 공룡의 두개골 화석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니콜라스 케이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마지막까지 경합했다. 이로 인해 T. 바타르는 당초 예상가였던 1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27만6,000달러에 낙찰됐다. 승자는 니콜라스 케이지. 하지만 그는 웃을 수 없었다.
T. 바타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육식 공룡 화석이다. 화석이 되기 위한 환경을 고려할 때 몽골 고비사막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몽골 정부는 T. 바타르 화석의 가치를 이해하고 1924년 국외 반출을 법률로써 금지했다. 1924년 이후 T. 바타르 화석의 유일한 소유자는 몽골 정부가 됐다. 이는 사적 거래가 불법임을 의미한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화석을 취득하면서 출처 확인을 게을리했다. 1948년 미국 연방도품법(NSPA)은 도난품의 취득, 이전, 보관, 운송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하면 형사적 제재와 민사적 제재를 받는다. 결국 그는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연락을 받고 몽골 정부에 화석을 반환해야 했다.
성상화 반환한 영국 팝가수 보이 조지
영국 팝가수 보이 조지 또한 문화재의 불법거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1985년 영국 런던의 미술상에서 한 점의 예수 성상화, 판토크라토르를 구입했다. 사건은 2011년 그가 영국 BBC와 인터뷰를 했을 때 발생했다. 보이 조지는 성상화가 걸린 자신의 집 거실에서 인터뷰를 했고, 그 장면을 키프로스의 주교 포퓨리우스가 지켜봤다. 이 성상화는 1974년 7월 터키가 북키프로스를 침공했을 때, 성샤랄람보스교회에서 약탈한 것이었다. 주교는 보이 조지와 친분이 있는 작곡가 존 테미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보이 조지가 반환에 동의, 사건은 마무리됐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영미법계 국가들은 도난으로부터 원소유자를 강하게 보호하는 법제를 채택하고 있다. ‘누구도 자신이 가지지 않는 것을 주지 못한다’라는 불문법 원칙은 선의취득 주장을 봉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북키프로스의 성상화가 도난품인 이상 보이 조지 또한 합법적 취득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출처 확인에 게을렀으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반환 의사를 표명하여 일말의 명예를 지켜냈다.
취득자, 도난 여부 면밀히 확인해야
오늘날 문화재 불법거래 문제는 우리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니콜라스 케이지나 보이 조지 같은 대중 스타들의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 수집 욕구마저 불법거래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기관으로서 박물관·미술관은 더욱 그렇다. 박물관·미술관의 수집 행위는 윤리성에 기초해야 한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박물관 윤리강령'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바로 수집 행위에 대한 윤리성 기준으로 출처 확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출처 확인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나 화재로 출처 기록이 부재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 소유자의 경우 대부분 구입이나 상속에 대한 기록이 부재하다. 도굴의 경우 그 은밀성으로 인해 원소재지 확인이 차단되어 있다. 때때로 출처는 조작되기도 하며 문화재 이전이 반복되는 경우 추적하기 어렵다. 설사 출처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신뢰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ICOM 박물관 윤리강령은 출처라는 특정 기록에 국한하지 않고 취득자에게 도난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모든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상당한 주의’이다. 출처가 갖는 유용성을 법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나치 약탈품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출처 확인의 문제가 국제적으로 대두되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약탈했던 유대인 예술품과 관련이 깊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나치 약탈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했다. 1998년 11월 워싱턴D.C.에서 국제회의를 소집했고 44개국, 13개 비정부기구들이 참여했다. 11개 조항에 달하는 ‘워싱턴회의 원칙’에 합의했다. 이를 근거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원상회복법'을 제정하여 나치 약탈품 반환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자 박물관·미술관 사회가 동요했다. 어떤 방법으로 나치의 관여를 확인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해결의 실마리는 미국박물관협회(AAM),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국제예술품연구재단(IFAR) 등 문화재 전문기관들이 제시했다. 2000년 초반부터 그들은 출처 확인을 위한 각종 지침이나 보고서를 생산해 냈다. 이들의 노력은 일제 강점기 당시 문화재 약탈을 경험한 우리 정부에 더 유용했다. 문화재청은 국제사회가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2010년부터 출처조사를 진행했다.
국외문화재 출처정보 연구 토대...'국외문화재역사관' 설립 추진
출처 정보는 1차 자료와 2차 자료로 구분된다. 1차 자료는 문화재의 물리적 존재가 출처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이다. 불화에는 화기(畵記)가 남아 있고 향완 등 불교 용구에는 원 사찰이 기록된 명문이 있다. 고서(古書)에는 소장정보를 알려주는 장서인(藏書印)이 있고, 묘지석에는 피장자의 신분과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년명(紀年銘)이 새겨져 있다. 2차 자료는 문화재 거래 과정에서 소유권의 변동이나 이전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말한다. 박물관 기록, 수납과 매각 장부, 구입 영수증, 경매 도록 등이 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과 상당한 시간의 경과로 2차 자료의 존재 여부는 불투명했다. 이것은 때로 문화재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장벽이 되었다.
국제사회가 출처 확인을 박물관·미술관의 법적·윤리적 책임을 확립하기 위해 접근했다면, 우리나라는 문화재청이 국외문화재 환수정책 차원에서 2010년에 처음 도입했다. 미술품 분야에서는 박수근·이중섭 등 근대회화 작품의 대규모 위작 문제가 발생하면서 작가의 전수도록을 의미하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가 주목받았다. 카탈로그 레조네의 핵심은 작품의 이력으로서 출처 정보를 담아내는 것이다. 출처야말로 작품의 진위나 가치, 소유권 확립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2018년에 환기미술관이 김환기 작품에 대한 카탈로그 레조네를 제작한 것은 근대 미술사 기록이 부재한 우리 상황에 비추어 큰 소득이다.
문화재는 국제교류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약탈되거나 소멸되기도 한다. 출처는 문화재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소멸해 가는 과정에 대한 역사기록이다.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국외문화재 출처정보를 50가지 주제로 세분화하여 연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또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외문화재의 가치와 역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역사적 플랫폼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바로 ‘국외문화재역사관’의 설립이다. 국외문화재역사관은 민족 수난에 대한 기억의 저장소이자 동시에 환수하는 과정을 통해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미래세대를 향한 학습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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